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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서남동, 화이트헤드를 만나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4-28 08:33 조회(8213)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9 
  FILE #1 : 서남동-과학과근대세계.hwp (23.8K), Down:17, 2006-04-28 08:33:34


2003-01-01 22:36: 1
 
 
 
 
내가 <화이트헤드 철학을 통한 새로운 민중신학 수립>을 연구하면서
놀라웠던 사실 중의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화이트헤드의 '화'자도 모른 시절,
그 생소하고 생경했던 시절에 철학 진영에서도 아니고
바로 기독교 신학 진영에서, 그것도 『기독교사상』誌에
화이트헤드 철학서에 대한 <서평>이 덜컥 올라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가 무려 1974년..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점은 그 글을 누가 썼는고 하니
놀랍게도 바로 1세대 민중신학자인 고 서남동씨였다..
아.. 역쉬 서남동~짱!!
 
현재는 1997년도에 한국화이트헤드철학학회가 창립된 이후
화이트헤드철학에 대한 인지도가 국내에도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긴 해도
아직도 다른 철학 진영에 비하면야 소수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금도 소수자인데, 당시 1974년도에 화이트헤드를 들먹인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거의 천연기념물에나 가까운 초희귀인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계기는 서남동씨가 연세대학교에서 같이 교수했던
당시 철학과의 오영환 교수와의 인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기에 무언가 있을 것이다'라고 알아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그 예리한 신학적 감수성만큼은 역시 서남동씨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안목이기도 하다..
 
어떻든 그 당시 국내사상가들 가운데 화이트헤드 철학을 논했는 사람은
거의 열손가락조차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국내의 기독교 신학 진영에서만 본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당시엔 서남동씨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본래 그의 『전환시대의 신학』을 보면
자연신학과 과학신학 그리고 과정신학을 언급하면서
화이트헤드 그리고 그 제자 하트숀까지 언급하고 있다(pp.52-53)..

 
사실 우리가 아는 『민중신학의 탐구』도 영감으로 가득찬 책이라고 하지만
『전환시대의 신학』 또한 엄청난 영감으로 가득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대체 1970년도에 벌써부터 이미 <인간복제문제>나
<생태환경문제>를 언급하는 신학자가 있었다니
서남동씨가 앞서갔어도 얼마나 앞서간 학자인지를 실감케 할 뿐이다..
 
나는 현재의 민중신학 진영에 다시금 되묻고 싶다..
그 이후 거의 30년이 흐른 지금에도
화이트헤드의 사상은 여전히 덮어놔야할만한 것인지를..
 
일단 지금 여기서는 1974년도 그 때 당시
죽재 서남동씨가 썼던 문제의 그 글을 올려본다..
 
서남동씨가 서평한 『과학과 근대세계』는 화이트헤드 저서들 가운데서도
서구학계에 가장 많이 읽혔던 저서로써
최고 으뜸인 『과정과 실재』 그 다음으로 꼽히는 대표작이기도 하다..
 
『과학과 근대세계』는 근대 과학의 붕괴와 그 이후에 나타난
자연과학적 성과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의 모색을 담고 있다..
근대세계의 종언을 고하는 화이트헤드는 이미 여기서 포스트모던의 징후마저 읽고 있는 것이다..
 
 
 

............................................................................................................................

(※ 이 글은 제가 한글파일로 정리해놨는데 가능하면 자료를 다운받아서
각주까지 같이 보신다면 조금더 도움이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과 근대세계』(A.N. Whitehead, 오영환 역)에 대한 서평
 
 
 
- 서 남 동
 
 
 
근자에 기독교 신학은 종래의 <교회의 신학>으로부터 <세계의 신학>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전체 세계에 오신 거시알고 한다. 교회의 담이 허물어지고 세계 사회로 통하는 <미시오 데이>의 신학이 대두된다. 정치와 혁명의 신학이 한창이다. 교회의 세계적 미션이라는 물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학의 인간세계에 대한 미션과 함께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또 창조된 세계 전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신학적 개념들은 고대와 중세의 우주관과 물질관을 전제로 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우주과과 물질관들이 후폐되어 버렸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전통적인 신학적 개념들도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 신학에서는 계시의 말씀이외에는, <신의 존재>에 관한 물음에나,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의미에 관한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인간과 신을 인간역사의 배경에서만 이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역사보다는 엄청나게 큰 자연이라는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종래의 기독교 신학의 배경도 지평도 아니었던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그 실재가 인간의 운명과 신의 활동에 관해서 더 강력한 요구를 하게 되었다.
 
첫째로 새로운 지식의 방법인 자연과학은 17세기 이후에 발달한 것이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둘째로 그 새 지식인 진화, 상대성 원리, 양자역학 등은 인간과 자연에 관해서 전적으로 새로운 이해를 제공했다. 셋째로 근자에 대두된 생태학과 생명과학 및 새 과학기술은 인간과 자연에 관한 또 새 차원을 열어 놓았다.
 
지금까지 신학이 ‘계시의 책’(성서)에만 의존하던 것이, 지금부터는 ‘창조의 책’(과학)에서 더 많이 인간과 신에 관해서 알게 된다. <교회의 신학>이 속(續)현대인(Post-modern man)에게 계시신학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자연신학으로도 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화이트헤드의 과학철학에 있어서 과학은 자연을 말하는 것이고, 또 그의 자연철학에는 신개념이 도입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무한히 기뻐하며 축하하는 바이다. 서양철학사에 있어서 중세와 근세를 획기하는 데카르트가 전 실재를 인간과 자연으로 양분해 놓았던 것을 화이트헤드는 다시 합일시킴으로써,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근세에 종지부를 찍고 새 시대를 열어 놓았다고 본다.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대립해 온 두 입장인 자연주의와 관념주의를 합일시킨 그의 철학은 <자연주의적 관념주의> 혹은 <관념주의적 자연주의>라고 불리어지는, 전 실재에 대한 하나의 포괄적인 비전이다.
 
화이트헤드는 궁극적인 실재를 데카르트식으로 물심이원론으로 보지도 아니하고 스피노자식으로 정적인 <하나의 무한한 실체>를 지정하지도 아니하고, 그는 사물의 밑바닥에 깔린 실질적인 활동(the underlying substantial activity), 곧 동적인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속에서 생성하는 모든 것을, 곧 신에서부터 먼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그는 <현실적 계기>actual occasions라고 했는데, 그러한 현실적 계기들이 <파악>prehension 이라는 속성으로 연결되어 전실재(우주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 계기>들은 다 정신적 극과 물리적 극의 양극이 존재의 비례차를 갖고 서 있다는 것이다. 신도 이러한 실재의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전형적인 존재로서 하나의 <현실적 계기>이기 때문에 정신적 극, 곧 <원초적 본성>과 물리적 극, 곧 <결과적 본성>이 있게 된다. 신의 원초적 본성에는 불변, 영원, 완전, 절대 등이 속하고 그의 결과적 본성에는 자유, 변화, 생성, 상대 등이 속한다. 이 때문에 화이트헤드의 신은 처음부터 <세계>와 함께 있었지 세계보다 먼저 있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현실적 계기>들은 정신적 극이 있는 것으로 말하기 때문에 일종의 범심론임을 보여준다.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전개하는 신 개념에 의하면 유기체인 우주의 근본적인 실재는 <과정> 혹은 <실질적인 활동>인바, 이것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영원한 대상>eternal objects, <현실적 계기>, <구체화의 원리>the principle of concretion, limitation, determination로 풀이한다. 그리고 이 <구체화의 원리>를 그는 신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신은 무한한 이념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세계로 구체화하게 하는 창조력이다.
 
끝으로 화이트헤드의 말 가운데 아마도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들 인용하는, 그의 종교에 관한 사상이 『과학과 근대세계』(번역책)의 299면 이하 나타나는 것을 참고로 인용하기로 한다.
 
“종교란 목전의 사물들이 변천해 가는 유동의 피안이나 배후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 실재하면서도 현실화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 머나먼 저편의 가능태이면서 최대의 현재적 사실인 그 무엇, 모든 변천해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만족하기 어려운 그 무엇, 잡으면 지상의 신이 되지만 손이 미치지 못하는 그 무엇, 궁극의 이상이면서도 가망 없는 탐구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의 형상(vision)이다.
 
이 종교적 형상에 대한 인간성의 단적인 반응은 예배로 나타난다. 종교는 미개한 상상력이 만들어 낸 가장 조잡한 공상을 혼합시키면서 인간의 경험으로서 나타난다. 이 형상은 점차적으로 착실하고 뚜렷하게 숭고한 형태를 더욱 높이면서 역사에 되풀이해서 나타났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 가운데 일관하여 향상의 경향을 나타낸 유일한 요소이다. 그것은 희미해지다가도 다시 되살아난다.
 
그러면서 그 힘을 새롭게 할 때마다 그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고 순수함이 더해진다. 종교적 형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확대되어 온 역사는 우리에게 낙관론의 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 그것이 없다면 인생은 고통과 비참 투성이를 비추는 잠시 동안의 기쁨의 섬광, 덧없는 경험의 하찮은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후에 출판된 『과학과 근대세계』(서광사, 1989)의 번역판에 해당하는 페이지는 pp.277-278를 찾아보면 되겠다. 원문을 보길 원한다면 A.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New York: Macmillan Pub. Co, 1925], pp.191-192를 보라).
 
어떤 사람들은 인간 역사의 지평을 전부라 생각하고, 자연사의 지평이나 형이상학은 불필요하거나 허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지금 나타나는 자연사의 지평에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또 형이상학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인간화 과정에서만 신의 역사를 본다고 하고, 인류의 출현이니 영의 차원에서는 신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철학에서는 신은 가리워졌고 거기에는 신의 자리는 없다고 하지만, 나는 화이트헤드에 따라서 거기야말로 성서의 신, 창조주가 계시된다고 보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번에 연세대학교의 동료 교수인 오영환 박사가 『과학과 근대세계』를 정성을 기울여 번역하고 또 해설논문까지 첨가하여 출판한 데 대해서 나는 참으로 감사한다. 충성스럽고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화이트헤드 사상의 전공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 출처 : 『기독교사상』(대한기독교서회) 1974년 12월호 
 
 
 2003-01-01 22:36: 1 /  242
 
 
 
 
 
박형규 (06-06-11 14:39)
 
정강길의 <W.H.와 새로운 민중신학>을 읽고서.
"7-80년대 군부정권의 억압하에서 기독교적 신앙의 표현으로 이에 저항하는 운동이 전개됐다. 이 운동의 성서적 신학적 근거를 찾아 나선것이 1세대 민중신학자들이었다. 서남동의 <민중신학의 탐구>는 한국적 토양에서 꽃피고 열매를 맺은 독특하면서도 세계적인 신학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21세기 새로운 세대의 신학자 정강길의 이 책은 한국 기독교의 변혁성과 보편성의 방향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한 역작이다.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을 댜행으로 생각한다.

min (07-01-27 05:00)
 
민중신학과 화이트헤드,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해할 수가 없군요.
서구 형이상학의 극점을 고민한 화이트헤드가 한국을 알기나 했을까요?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무분별한 서구 이론에 짜맞춰 해석되는 한국의 상황,
그런 거짓 해석은 그만 두시지요.

미선이 (07-01-27 05:28)
 
잉??????  &%$#* @.@??
아예 읽어보지도 않은듯.. 아마 앞으로도 알아볼 맘도 없을 듯~

min (07-01-31 02:45)
 
그렇습니다. '미선이'님의 저서를 읽지는 않았지요.
이 홈페이지를 방문하고서 위와 같은 무례한 댓글을 남겼습니다.
이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는 신앙을 신비롭게 여기는 일개 과외 철학도에 불과합니다.
지난 시기 애국적인 사회변혁의 한 방편으로서 소위 '민중'과 함께 철학의 문을 두드렸고 근래에는
제 몸 하나라도 온전히 건사할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철학의 울타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하니 예나지금이나 철학 저편 신앙의 영역에 관해서는 경외의 마음으로 고개를 조아릴 따름이지요.
그러나 각박한 싸움들 끝에 숨을 고를 때 이른바 '민중예수'에 대한 물음이 맴돌고 있었다는 것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신앙이 제게 풀기 어려운 난문이었다면 민중예수는 명백한 실천의 지표와도 같았습니다.
비록 그 흉내조차 내기 어려웠지만 말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추상에 가까웠던, 서구 변혁이론의 운동의 주체들을 민중신학 속에서 분명히 만날
수 있었지요.
하여 다른 경로로 이 싸이트를 방문하게 되었지만 그저 몇몇 페이지들을 둘러보고 그 화려함이 놀랍고 낯설어
님이 전면에 내세운 '화이트헤드', 민중'신학'을 읽지도 않고 위와 같은 거친 댓글을 단 듯 싶습니다.
이 점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건필하십시오.

미선이 (07-01-31 04:36)
 
그렇군요.. 저 역시도 민중예수는 너무나 명백한 실천의 지표입니다..
혹시 안읽으셨다면, 이곳의 글들 중에서 제가 보는 예수 이해에 속하는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3)>라는 글을 부족하지만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http://freeview.org/bbs/tb.php/b001/26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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