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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3)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 <만무>滿無 full naught ①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8-14 17:45 조회(7795)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27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3)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 <만무>滿無 full naught ①
 
 
 
 

영성이란 나 자신이 겪는 삶의 모든 총체적 과정 가운데서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선택지들 가운데 가장 최선의 합리적 선택지를 밟아 나가는 본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 앞에 매순간마다 놓여지는 선택지들 중, 어느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인지, 어느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지인지 깨치는 것은 영성수련, 곧 <공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성수련의 극치는 무엇일까? 영성수련의 최종 목표인 종점은 어디인가?
 
영성수련의 궁극적 도달점은 <나와 하나님과의 완벽한 하나됨>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차원이다..'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한복음 10장30절) 공자는 이를 두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했다. 아-, 미천한 우리들은 언제 이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으랴! 아마도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는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가능성의 빛을 보는 종교인 것이다.
 
공자는 그의 나이 칠십이 되어서 '從心所慾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나의 판단을 내 마음 가는대로 내려도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상의 선택지를 지속적으로 밟아나가는 차원이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차원이다.. 나는 영성의 이러한 최고 경지를 <만무>滿無라고 부른다..
 
<만무>는 내 안에 내가 없고 하나님을 완벽하게 채운 상태인 것이다.. 나의 고집스런 자아는 조금도 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본성만이 내 안을 가득히 메운 차원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장20절). 바울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뒤늦게나마 이러한 경지에 올랐는지는 몰라도 그는 이러한 차원이 어떠한 것인지는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불완전한 내 안에 하나님의 본성을 채움으로써 자연스레 바른 길로만 흘러나가는 이러한 상태를 지니는 것이야말로 바로 영성의 최고 종점인 것이다. 그리스도란 <만무>滿無, full naught를 체득한 자를 의미한다.
 
이것은 중세 기독교 신비가였던 에크하르트(Eckhart, Meister)가 영성의 가장 최고정점으로 봤었던 <무심>無心의 차원이기도 하다. 에크하르트는 기독교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가치보다 <무심>의 차원을 더 높게 봤었다. <무심>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완전히 체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무심을 말하면서도 무심의 두 가지 차원을 구별하지 않았기에 나는 조금은 다른 용어로 <만무>라고 표현코자 한다.
 
<무>無의 두 가지 차원에 있어서,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차원의 無와 그 모든 것을 채워서 악을 퇴화시킨 無는 차원이 다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전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의 순수한 백치일 수 있고, 후자는 앞서 공자가 이뤘다는 칠십의 경지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둘 다 거기에는 선악이 구분되는 인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無爲에 속하는 것이다. <만무>에는 그러한 인위가 퇴화된 상태로 극복되어 오직 신적인 품성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내가 말하는 <만무>는 <충만(充滿)의 無>요 <없음의 無>가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맘속에는 아직 선악에 대한 분별이 없다. 즉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상태와 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선악을 알게 된 후 다시 <선악을 극복한 차원>은 선악에 대한 경험을 가지지 않은 어린아이의 동심과는 엄밀히 다른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악으로부터 선의 분리가 아니다. 그것은 선에 의한 악의 극복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으로의 악의 변화는 신의 본성에 포섭됨으로 인해 현실 세계로 들어오게 되는데, 그 신의 본성은 선의 회복을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의 새로운 결과를 수반한 각각의 현실적 악에 대한 이상적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 신은 자신의 본성 속에 악과 고통과 퇴화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한 것으로 극복된 채로서 있는 것이다“(RM 148-149/155).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건 건넘돌이 되는 필연적 과정일 수 있다. 따라서 악은 선에 있어서 강도intensity의 느낌을 위해서 의미가 있을 뿐이며, 그것은 늘 제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아마도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된 채로는 그 자신의 품성적 성격상 합일될 순 없었기에 종국에는 선악을 극복한 인간과 그 자신과 하나됨을 이루고자 자신의 계획을 어김없이 실행하셨던 게 아닐까 한다.
 
인간은 그 자신이 신적 상태로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과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자율적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어긋남이 하나도 없는 가운데서 서로 교통하고 있는 차원인 것이다.
 
 
 2004-01-17 15: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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