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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6-07-10 15:30 조회(8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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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하자!
새해엔 하나님 나라 운동의 사명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라며..
 
 

윤홍민 yhm2002@freechal.com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 (정강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회심(回心)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느껴지며 성령님의 ‘임재의 능력’을 체험하는 그러한 신령한 경험 말이다.
 
1995년, 교회 고등부 여름수련회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니 저물어 가는 2005년은 주님을 만난지 1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가 된다. 더군다나 그동안의 신앙적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기독교 운동, 하나님 나라 운동의 비전을 품게 된 원년(元年)이 되기에 더욱 각별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 올해를 그냥 보낼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의 꿈을 불어 넣어준 정강길(이하 저자) 님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 2004)에 대한 서평과 나의 신앙 역정을 버무려 10년 신앙생활을 총결산하고 신앙방황을 매듭지으며,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고자 한다. 그래야 떠나가는 해의 아쉬움이 조금은 달래질 듯 하다.
 
어느 자매는 내 기도 소리에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다니던 교회는 근본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보수적 교회였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교파에 상관없이 다 이러한 신앙 색깔을 갖고 있다. 이런 교회에선 성서의 진리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 8개 낱말로 집약이 된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당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어이없는 교리가 한국의 보수교회에서 가르치는, 아니 이천 년 서구 기독교가 가르쳐온 핵심교리이다.
 
필자도 회심한 이후 이것이 기독교의 참 진리인 줄 알고 전도에 열심을 내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예수 안 믿으면 영원히 뜨거운 지옥 불에서 죽지도 않고 고통만 당한다는데 예수 안 믿고 죽는 사람들 얼마나 불쌍한가? 이런 순수한 마음에 가는 곳마다 '사영리'를 들고 복음(실상 엉터리 교리이지만)을 전하러 다녔다. 버스에 타신 어느 할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저분이 지옥 갈 텐데 라는 생각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학교 친구들에게도 틈만 나면 전도하고 설교하였다. 어느새 학교에선 ‘윤 목사’로 통했다.
 
기도에도 욕심쟁이가 되었다. 한 번 기도하면 두 시간은 기본.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교회의 모든 공(公)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새벽 기도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신앙이 급성장했다. 교회에선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을 받았고 많은 아줌마 집사님들이 나의 기도에 감명을 받곤 했다. 청년회 어느 자매는 나의 새벽기도 소리에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할렐루야!!!

말씀도 꿀 송이처럼 달았다.(물론 사복음서와 신약의 서신서에만 해당되지만.) 늘 성경을 끼고 다니며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했다. 성서는 무오하다고 굳게 믿으며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했다. 심오한 진리를 담은 성서를 좁고 경직된 시야로 보니 어찌 신앙이 왜곡되지 않으랴! 그러나 당시에는 문자 그대로 무조건 믿는 것이 참 믿음인 줄 알았다.
 
소설 태백산맥 통해 임재한 성령은 나를 민중신학으로 인도
 
1998년 겨울, 또 한 번의 회심의 은혜가 내게 임했다. 은혜의 통로는 어느 부흥회도 아니요, 기도원도 아니었다. 생뚱맞게도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서였다. 소설을 통해서 생생하게 접한 한국전쟁의 참담한 비극에 어안이 벙벙해 졌다. 300 만 명 이상의 생명이 ‘증발’해 버린 민족의 비극은 나의 타 계적이고 몰 역사적인 신앙에 깊은 회의를 갖게 했다.
 
도대체 당시 한국인들이 무슨 잘못이 있 길래 이런 개죽음을 당해야 하나? 이들 중 예수 안 믿으면 무조건 지옥가나?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은 것도 원통한데 죽어 서도 영원히 불구덩이 지옥에서 고통만 당해야 하나? 차라리 나 혼자 지옥에 들어가도 좋으니 모든 이들이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으로 집약되는 근본주의 배타적 기독교는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나의 삶과 신앙을 옭아 맺던 절대 불변의 교리에서 해방된 순간이었다. 그해 겨울, 태백산맥을 통해 임재한 하나님의 성령이 내 심령에 차고 넘쳤다. 폭포수 같은 은혜의 시간이었다.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전쟁 전후로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가 궁금하여 강원용 목사의 ‘빈들에서’란 자서전을 탐독했다. 강 목사도 어린시절 극 보수에서 진보적 신앙으로 전환한 과정이 나랑 흡사했다. 격동의 20세기 현대사와 어우러진 강 목사의 삶은 대단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을 통해서 민중신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민중신학서를 탐독하게 되었다.
 
▲민중신학의 선구자 고 서남동 안병무 박사
특히 안병무 박사의 <역사와 해석>은 성서 자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와, 성서의 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유려한 문체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성서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있으며 예수도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하다 정치범으로 사형 당했다는 메시지는 충격 그 자체였다. 대속의 교리에 묻혀 진정 예수가 지신 십자가의 의미도 모른 체 십자가를 증거 하고 다녔으니 내 자신 소경인 주제에 소경을 인도한 꼴이었다.
 
문익환, 홍근수, 박재순, 오강남, 김송달 목사님의 저작들을 섭렵하며 점점 민중신학과 새로운 기독교 신앙(이것이 본래 신앙의 원형이라 믿고 있지만)에 빠져들고 매료되었다. 특히 문익환 목사의 구약 강해(히브리 민중사)는 성서와 기독교가 민중을 위한 종교이고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의 평화와 화해의 전언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분이 왜 영혼구원이 아니라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헌신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성서와 역사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의 저작물들을 통해 한국의 근본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보수신앙은 하나님이 바라는 그리고 예수님이 사셨던 믿음의 길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보수신앙은 내면의 위로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 험난했던 역사의 굽이길에서 우리 민중들의 고달픈 맘을 적잖이 위무한 공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탈역사적이고 타계적인 개인 구원만 강조하는 보수 기독교는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다.
 
민중신학의 2% 부족함을 찾아서
 
열매를 보면 나무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독재 정권과 결탁해 양적, 가시적 성장만 추구한 보수 기독교는 한국의 대표적인 냉전 수구세력이 되어버렸다. 교회 지도자들에게선 예언자적인 영성은 고사하고 상식적인 인식도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대형교회는 각종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고 무슨 무슨 게이트마다 집사님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국보법폐지 절대 반대와 순교자의 각오로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이들의 결기가 무섭기만 하다. 시민사회의 민주적이고 정당한 의사표시에 ‘친북, 좌파’라는 딱지를 덕지덕지 갖다 붙인다. 이들과 내가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단 말인가? 창피한 일이다.
 
여하튼 왜곡된 신앙에서 참 신앙으로의 전환은 나에게 예수를 믿는 진정한 자부심을 주었다. 기존의 나의 신앙 행태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나를 이단이네 삼단이네 하면서 마귀 취급 했지만 나는 이렇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다. 어디 가서 당당히 기독인이라고 말하며 십자가의 진정한 도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민중 신학을 접하면 접할수록 무언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선 조직 신학의 체계가 없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중추적인 뼈대가 없다보니 보수신학에서 말하는 신론, 구원론, 선교론, 목회론 등등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 지 뚜렷한 개념들이 체계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대안이 되기엔 학문적인 엄밀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얄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사회정의와 민주화 운동으로만 환원되는 느낌도 강했다. 마르크스 사상에 경도된 측면도 상당했다. 또 다른 아쉬움은 민중신학을 기반으로 목회를 하는 민중교회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민중교회 지도자들이 민중 신학은 목회에는 부적합하다며 ‘아웃’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보수교회에는 수백만의 민중들이 몰리는데 정작 민중교회엔 민중이 모이지 않았다. 무언가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영·육 이원론이 비역사적인 교리 양산한 것
 
정강길(이하 저자)님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 2004)은 필자의 일천한 식견으론 뚜렷이 알 수 없었던 그래서 느낌으로만 파악한 민중신학의 한계를 명확히 들춰낸다. 그리고 철저히 비판하고 해체한다. 그러나 무책임하지는 않다. 그의 말마따나 다시 세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존 서구신학과 민중신학 모두 잘못된 형이상학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구신학은 플라톤적인 관념론 , 즉 이원론을 신학의 밑변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이원론이 줄곧 신학의 베이스로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에 따른 기독교 신앙 역시 몰역사적이고 타계적인 행태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온 우주를 영과 육으로 나누는 그리스 철학으로 체계가 잡힌 서구신학은 그래서 ‘초월신관’이니 ‘성서무오설’ 같은 비역사적이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교리를 양산해 내었던 것이다.
 
저자는 기존 민중신학자들이 그동안 민중신학을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만 논의하고, 민중신학 기저에 해석학적 존재론 곧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적 기초를 놓는 작업을 소홀히 한 것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저자는 기존 민중 신학은 형이상학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한 적이 없었으며 기껏 맑스주의와 해체주의에 경도된 측면이 많았다고 지적하며, 이런 반플라톤적인 철학에 기반한 민중신학은 그 철학의 한계를 고스란히 넘겨받을 것이라고 갈파한다.
 
또한 기존 민중신학자들은 반서구신학의 기치만 내세우며 서구신학의 해체만 주장할 뿐 어떤 대안적 신학 체계를 세우려 하지 않음을 비판한다. 왜 지금껏 민중신학이 조직 신학의 체계가 잡히지 않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강길의 신학작업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
 
그럼 저자는 어떠한 민중신학을 주장하는가? 저자는 민중신학의 베이스에는 모든 인간에 깃든 내적 일그러짐과 존재 고독에 대한 근원적 치유 문제와 계급과 착취의 문제를 다루는 사회학적 지평에 대한 문제들을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구도로서의 세계관이 최우선적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형이상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화이트헤드.
그 세계관을 저자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에서 찾는다.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민중신학의 조직 신학적 작업을 꾀한다. 또한 이를 주축으로 한 저자의 새로운 민중신학은 이천 년 기독교 신학사상의 대해 反신학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 신학사상과 교리들을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는 再신학을 지향한다.
 
결국 저자의 최종 목적은 관념론적 철학을 밑변으로 하는 전통신학의 장점과 세계에 대한 사회 변혁을 놓지 않는 민중신학의 장점들을 화이트헤드의 철학 안에서 조화롭게 지양하고자 하는 창조적 신학 수립으로 귀결된다.
 
민중신학에 입문하고 새로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들었던 2% 부족한 부분도 정강길님의 치열한 학문적 사색과 성찰,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집적물인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으로 거의 해소가 되었다.(나머지는 필자의 몫이리라.)
 
저자는 白頭 선생의 탄탄한 철학을 밑변 삼아 신론, 구원론, 민중론, 선교론을 새롭게 세워 나가고 있다. 바야흐로 이천 년 내려온 서구신학의 관념론적 병폐와 민중신학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신학이 정강길님을 통해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의 사역에 기꺼이 동참하련다
 
근본주의 보수신앙으로 출발하여 새로운 민중신학과 하나님 나라 운동의 동역자가 되기까지 만 10년을 꼬박 채웠다. 10년 전 배타적 신앙으로 불신자들을 마귀 취급하던 내가 이제는 과거 신앙 동지들에게 사탄 취급을 당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거듭 말해두지만 나는 지금의 내 신앙의 길이 성서가 증언하는 길이요, 예수가 추구한 진리였으며,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생명의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해에는 지난 10년의 신앙 역정을 거울삼아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에 총력을 기울이려고 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는 참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역에 기꺼이 동참하련다.
 
새해엔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하려는 사명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 같다. 정강길님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이 장작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기에.

 
 
 http://www.ecumenian.com/news/read.php?idxno=526
 
 
예수사람 (06-07-14 09:46)
 
오늘 아침, 이 책의 주요 부분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보통 민중들이 내면의 일그러짐에서 자유하도록...저자와 같은 자각인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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