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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 민중신학자 대회를 다녀와서..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9-21 23:16 조회(6857)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42 





모처럼 현재의 한국 민중신학을 되짚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고 본다. 물론 한국의 민중신학자들이 다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침체일로에 있다는 한국의 민중신학을 위해 나름대로 관심하고 모여서 얘기를 나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고 뜻깊은 행사였다고 본다.
 
그래도 늘 그렇듯이 서울 중심이라는 점에선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 번에는 순천의 송기득 교수나 부산의 김명수 교수처럼 지방에 계신 여러 민중신학자들의 얘기도 들어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물론 언론도 너무 서울 지역의 행사나 학자들에만 부각시키는 느낌이 있다.
 
그날 한국민중신학자 대회에서 발표된 글에 대해 몇 가지 생각들을 읊어보고자 한다. 물론 나 개인적인 견해이겠지만 이러한 나의 견해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다면 그리고 구체적인 근거만 있다면야 언제든지 해주어도 괜찮다고 본다.
 
늘 그래왔듯이 한국 민중신학자들은 늘상 90년대에도 했던 얘기들을 또 자꾸만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번에도 한국 민중신학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하는 그 자리가 여전히 그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 생각으로는 백수민 학우의 글과 김진호 선생의 글은 단연 돋보였다고 본다.
 
백수민 학우의 글은 사실상 전체 기독교의 맥락에 있어서도 아주 깊고도 거대한 문제를 건드렸는데, 그것을 자신의 신앙여정의 삶과 연관해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아주 돋보였다. 그것은 체험을 통한 삶의 귀중한 사례들과 연관해서 기독 신앙을 고찰하고 있기에 그속에 녹아있는 고민의 무게감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제시한 한국기독청년의 과제는 적실하게 짚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현재 가고자 하는 신학적 방향만큼은 매우 잘 잡혀 있다고 여겨졌다.
 
또한 김진호 목사의 글은 흔히 우리 자신들이 간과하기 쉬운, 일상 속에 은폐된 고통의 코드들을 읽어내고 이를 폭로하는데 눈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선 나름대로 의미있는 글이라고 본다. 육체성의 사회에서 고통의 발생은 통제가 아닌 유혹으로서 다가온다는 점은 매우 탁월한 관찰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나 자신은 3세대 민중신학도 비판하는 쪽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안의 다양성 혹은 일상성들을 매우 중요하게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이 흔히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짚어주고 있다는 점에선 김진호 목사의 글은 아주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거친 스케치로 본다면, 전자는 거대담론을 건드리고 있고 후자는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되는 미시적 영역에 주로 포커스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어찌되었든 둘 다 중요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선 이번 대회에서의 매우 의미있는 성과라고 보여진다.
 
그 외 교회개혁의 청년주체를 부르짖는 고상균 학우와 어린이 신학을 얘기하는 이춘선 박사는 문제제기의 차원이란 점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얘기일 수 있다고 본다. 어린이 신학 같은 것들은 어차피 기존 민중신학의 코드들 안에서도 분화될 수 있는 논의들이긴 하다.
 
사실 알고 보면 처절하게 고통당하는 민중들은 언제나 다양하고도 많잖은가. 어린이 신학(이춘선 박사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세계 안의 죽어가는 아기들을 위한 베이비 신학(?)이란 것도 떠올려졌다), 장애인 신학, 이주노동자 신학, 동성애자 신학, 죽어가는 생태, 여성, 청년 등등 모두가 시급하게 살아야 되고 주체가 되어야 함을 부르짖는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인 것이다.
 
그 외의 글은 솔직히 말해서 좀 너무 식상한 점이 없잖아 있다. 그 가운데 임태수 교수의 얘기는 너무 보수적인 색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 임태수 교수의 글은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주장들을 계속적으로 듣는 느낌이다. 그는 <행함을 배제한 믿음 강조의 신학>을 교회 위기를 좌초한 잘못된 원인으로서 제시했지만, 사실 이것조차도 역시 그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서 그 어떤 원인이란 당연히 이원론적이고 관념론적인 세계 해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뜻한다. 바로 이원론적인 세계 해석은 기존 기독교 신학에 주도적으로 깔려 있다.
 
나는 그렇기에 행함과 믿음을 이원적으로 구분하고서 <행함이 부수적인 믿음 강조의 신학>과 신앙으로 기울게 되었다고 본다. 이미 기존 기독교의 교리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선한 나무가 선한 열매를 맺듯, 올바른 믿음(신념)이 되어 있다면야 올바른 행함(실천)을 낳는다고 본다. 그리고 믿음과 행함의 문제에 대해선 정용섭 목사나 박득훈 목사의 글도 참고할만 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임태수 교수는 역사비평의 한계와 단점들을 얘기했지만, 사실 역사비평에 의해서 진리에 대한 믿음이 상실될 정도의 것이라면 어차피 깨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본다. 즉, 이성의 잣대로 가했는데도 깨트려질 것이라면 그냥 깨트려지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이다. 진리가 이성에 의해서 깨트려진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한국교회의 경우도 포함해서 성경의 역사비평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가르치질 않음으로서 야기되는 문제들이 훨씬 더 크고 많다고 본다.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우는 무지와 아둔함만 제공할 따름이다. 성경=하나님 말씀이 아니라면, 치열한 역사비평을 받아들인들 뭐 어떻단 말인가.
 
임태수 교수는 유럽교회를 얘기했는데, 나는 현재의 유럽교회가 문을 닫아서 더 안좋은 상황이라고 보질 않는다. 적어도 예전의 보수 기독교 교회들이 즐비할 때보다는 좀더 보다 나은 과정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생각해보라. 기독교인의 숫자가 줄었다고 해서 유럽시민들의 정신연령들이 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잖은가. 이것은 유럽이 이제 기독교에 대해서만큼은 무언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원하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예전의 낡은 기독교가 더이상 유럽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는 단계에 와 있다는 분명한 징표인 것이다.
 
이성의 성장에도 단계가 있다. 그것은 곧 1) 이성 이전의 단계, 2) 이성의 단계, 3) 이성 너머의 단계이다. 이때 이성 너머의 단계는 두 번째 이성의 단계를 필연적으로 거친 것이라 이성을 두려워하거나 배제할 필요가 전혀 없는 단계인 것이다. 이성 너머의 단계는 이성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이 감성과도 통전되어 덕성으로도 나타나는 전인적 향상과 초월의 단계이며, 모든 금지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자유롭게 진리 인식의 즐거움과 체험을 향유하는 단계라고 본다.
 
신앙의 신비는 이성 너머에 있다고 해도, 이성을 배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결코 아니란 사실을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근대 계몽주의 한계를 굳이 말한다면, 이성의 단계 자체에 대한 맹신에 있을 뿐,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 중세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임태수는 결국 BS차일즈의 경전적 성경해석을 대안으로 말했지만, 사실 경전적 성경해석의 한계는 이미 경전성 혹은 경전적 통일성에 대한 전제가 필연적으로 강제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흡사 이것은 종교다원론 가운데 포괄주의를 떠올리게 하는데, 다시 말해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 연역적인 것이다.
 
성경은 읽는 자와 상호교감 하는 가운데 그저 깨달은 만큼 보여줄 뿐이다. 혹자는 여기서 기독교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기독교 정체성과 좀더 정확하게 구분해본다면, 나는 성경이 필연적으로 경전이어야 한다는 점에 있는 게 아니라, 일단은 성경을 가지고서(with) 세계를 이해한다라고 하는 성경의 도구성에 있다고 본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일단 세계에 대해 무언가 얘기한다라고 했을 때 성경을 선택했다는 점에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은 예수사건을 담고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즉, 정체성 문제는 불가피하게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선택 차원에서 논할 사항이지, 정체성 수준에서 무조건 믿어야만 하는 명제가 주입될 순 없는 거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경을 경전이라고 얘기할 경우는, 이미 그 명제가 자신의 경험적 고백으로서 직접 체험되어야 하는 차원이어야지, 읽기도 전에 시작부터 성경의 경전적 통일성을 강요할 순 없다고 본다. 경전적 성서해석에서는 경전적 통일성이 이미 성경해석의 방법론적 전제로서 깔려 있다.
 
물론 선택한 그 도구로 세계를 보는 데에는 불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성경에는 분명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구절들도 명백히 있다. 분명한 성차별 구절들을 놓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받아들이겠는가. 그럴 경우, 성차별의 구절을 통해 오히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순 없는가. 성경의 오류들을 우리 자신들의 오류들로 생각할 수 없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성경은 성경 스스로가 이미 경전적 해체성마저도 지니고 있는 경전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계시는 오류의 극복을 통해서 그나마 좀더 얻어질 수 있을 뿐이다(참고로 직관의 경우는 어차피 객관화하기가 더욱 힘들 뿐).
 
<경전>이란 말은 어차피 본문과 독자의 상호관계성의 여러 이름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경전이라고 떠받든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성경을 경전으로 고백함으로써 그것은 오히려 세계 안에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하였었고, 때로는 성경이 경전이 됨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유용한 전거가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성경을 경전이라고 본다고 해서 성경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이 경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성경도 궁극적으로는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일뿐인 것이다.
 
이번에 한국 민중신학이 교회개혁을 얘기하였다. 그럴려면 어차피 나로서는 기존의 주류 기독교의 교회론 자체를 새롭게 대체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본다. 그 한계를 넘어서, 결국은 “민중신학이 말하는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궁극적으로는 이미 같은 선상에 있는 논의여야 한다는 얘기다.
 
억압과 고통이 횡행하는 부조리한 상황은 한국의 국소적인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민중>Minjung이란 세계 안의 모든 고통받는 생명들을 뭉뚱그려 한국식으로 표현한 용어이기도 하다. 교회는 이에 대해 책임있게 응답해야 할테지만 현재의 기독교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삼는 한국의 민중신학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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