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35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35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보수 근본주의
중간 복음주의
진보 기독교 진영
민중신학 & 살림신학
종교 일반 & 사회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567
어제 794
최대 10,145
전체 2,267,840



    제 목 : 서남동 신학, 어떻게 볼 것인가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4-30 08:37 조회(9040)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11 
  FILE #1 : 서남동신학어떻게볼것인가.hwp (31.0K), Down:18, 2006-04-30 08:37:50


서남동 신학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1. 들어가며
 
아주 오래전에 언젠가 김경재 교수님과 민중신학 발제를 한 자리에서도 밝힌 적 있지만, 나는 우리나라 그 어떤 신학자들 중에서도 서남동의 신학적 감수성을 능가하는 사람을 여태껏 보질 못했었다. 그의 신학적 감수성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조차 최고로 남아있다. 그에게서 보여지는 급진성은 그 자신의 솔직함에서 비롯할 뿐이다. 굳이 로빈슨(J.A.T. Robinson)의 『신에게 솔직히』라는 저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학은 언제나 신 앞에 솔직한 학문이어야 한다. 그가 쓴 『전환시대의 신학』(이하 ‘전신’으로 약칭)서문을 보면 그 자신의 사상적 여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 여기서 그는 여러 가지 세계 신학적 조류들에 민감하게 열려 있는 동시에 이를 소화하고자 하는 신학적 열정을 인상깊게 뿜어내고 있다. 실제로 서남동의 또다른 이름이 바로 <신학의 안테나>였다는 점은 그의 신학적 감수성이 얼마나 첨예한 것인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여기서는 서남동의 신학적 여정을 전체적으로 개관하고서 그러한 가운데 그의 <민중신학>은 비로소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2. 서남동 민중신학에 대한 평가들
 
이러한 서남동 신학에 대한 기존의 평가들은 놀랍게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게 중에는 서로 상충되는 견해도 있다. 김경재 교수는 서남동의 신학에 대해 평가하길 실존주의, 과학사상, 본회퍼의 사상, 그리고 이 모두가 어우러진 정치신학사상이었다고 평가한다.[1] 강원돈은 서남동의 신학이 이미 실존주의를 넘어서서 맑스주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2] 박성준은 오히려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맑스주의적 도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평가하고 있다.[3] 또한 박재순은 서남동을 기독교지평에서는 갈 데까지 간 사람이라며 매우 급진주의자로 평가하는데 반해,[4] 채희동은 『민중 성령 생명』(부제-서남동의 생애와 사상)에서는 서남동 신학을 생명사상과 관련지어서 민중생명신학으로 보고 있다.[5] 사실 이같은 서남동 신학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은 1세대 민중신학에 대한 전체 평가와도 맞물려 1세대 민중신학은 매우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1세대 민중신학을 두고서 강원돈처럼 맑스주의적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김경재는 1세대에게서 과정사상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6] 뿐만 아니라 1세대 민중신학에서 해체주의적 해석을 내리는 평가도 있다.[7] 해체주의적 성격은 3세대 민중신학에서 극명하게 부각되고 있다. 이같은 점은 적어도 1세대가 이후의 2, 3세대 민중신학보다는 좀더 모호하고 다층적인 신학적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겠다.[8]
 

3. 방외인 이전과 이후 - 『전환시대의 신학』시기와 『민중신학의 탐구』시기
 
나 자신은 서남동 신학순례의 여정을 크게 둘로 나눠본다. 첫째는 연구강단에서의 신학적 순례, 즉 방외인의 신학 이전까지의 여정과 두 번째는 방외인으로서의 신학 즉, 민중신학 순례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생전에 저서를 두 권밖에 남기지 않았는데, 전자의 결과물이 바로 『전환시대의 신학』(1976)이었고, 후자의 결과물이 바로 『민중신학의 탐구』(1983)이라 할 수 있다. 그 스스로 고백하듯 『전신』은 서남동 개인의 역량이 집약된 결과라면, 『민탐』은 서남동 뿐만 아니라 당시의 소장신학자들이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받은 신학적 충격이 같이 반영된 저서이기도 하다(민탐 4). 그래서 그런지 『전신』과 『민탐』의 두 신학적 여정 사이에는 불연속적인 간격이 있다. 사실 이점은 서남동 신학 뿐 아니라 전체 민중신학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실인데, 당시 그에게 육박해 들어왔던 시대적 상황은 그를 결국은 <방외인>으로 내몰았었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는 달리 네모반듯한 신학을 할 수 없는 신세였다고 고백한다.

 
4. 서남동 민중신학의 정황
 
서남동은 그 신학적 사고와 감수성이 세계 신학의 조류와 흐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학자였다. 그는 끊임없이 세계 안에 일어나는 새로운 신학적, 사상적 흐름들을 포착하고 이를 국내 기독교계에 소개하면서 그 자신의 신학적 사고 또한 숙련시키고 연마해왔던 기독사상가였다. 그는 신학의 새로운 물결들을 도외시하거나 비껴가지 않고 혼신으로 넘어가고자 했다. 이러한 신학적 분위기는 당시 국내에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대립구도를 보이기도 했었는데 1964년에 본회퍼로부터 받은 신학적 충격 이후 대략 십 년간이 국내 기독교 신학계가 소용돌이 쳤던 시기였다고 그 스스로가 얘기하고 있다(전신 8). 그러나 이러한 논쟁적인 신학담론 역시 그 놓여 있는 자리가 결국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역사적 맥락에 놓여 있었다.
 
이같은 상황적 여건은 결국 이들에게 크나큰 신학적 분기점을 형성하고야 말았는데, 늘 세계 신학 담론에서 충격을 곧잘 받아왔던 서남동이 이번에는 아예 신학 담론이 아닌 외부 진영에 의한 충격이 그에게 가해졌던 것이다. 바로 그때가 박정희 유신체제 하에서 기층민중의 희생을 담보로 부단히 자행되어왔던 근대화시기였다. 전태일 사건은 그러한 암울한 시대의 희생양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민중적 저항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같은 민중사건을 접했던 일부 소장신학자들은 그 순간 자신들이 그때까지 연구하고 공부해왔던 서구 신학의 기제들을 일순간에 놓아버렸고 서구에서 접하는 신학담론들에 도무지 계속 전념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서남동도 바로 여기에 포함된다. 실로 그 충격은 참으로 어마어마하고 굉장한 것이었으니.[9]
 
이러한 충격을 받은 뒤에 다시금 성서와 교회사를 들여다본 결과, 그때까지 서구 기독교 신학에 길들여져 왔음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무언가가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었던 것이다. 즉, 이들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역사적 맥락에 놓여 있다고 봤던 민중사건들이 놀랍게도 성서와 교회사 가운데서도 그러한 민중적 전통이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실로 이것은 이천 년 그리스도교 신학사에 있어서 위대한 신학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5. 민중신학과 그 시대적 한계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 엄청난 신학적 발견을 놓고서 당시의 민중신학자들은 이를 튼튼한 기독교 신학으로 재무장 혹은 체계화하기 위해선 도무지 어디서부터 그 작업이 제대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몰랐었다. 이들은 그토록 굉장한 신학적 발견을 두고도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던 것이다. 이들 한국 민중신학의 개척자들은 당대에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사건들에 집중한 나머지 민중해방을 위한 실천적 차원에만 온통 주의집중을 기울였던 것이다. 비유컨대, 민중사건으로 인한 놀라운 신학적 발견을 금덩어리에 비유한다면, 그들은 눈앞에 보이고 발견되어지는 금을 캐내는 데에는 급급했지만 그러한 금맥의 진원에 대해선 전혀 고찰해보질 않았다는 얘기다.[10]
 
그러나 당시의 민중신학자들이 그러한 사정을 보였던 것은 이또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긴 하다. 그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정황이 그만큼이나 절박했었고 암울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절박하고도 암울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발생하는 민중사건에 대해 한국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이론을 펴기에만 급급했었던 것이다. 결국 이같은 사정은 민중신학 그 자체의 학문적 정합성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경향으로 나타났었다. 이후의 민중신학 또한 조직신학적 체계화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그저 시류적인 사회문제를 신학언명으로 담론화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3세대도 민중신학을 그저 신학하기를 기반으로 한 그때그때마다의 저항담론으로 보고 있다.[11]
 

6. 서남동의 「두 이야기의 합류」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말할 때 꼭 빼놓치 않는 그의 대표격 논문인 「두 이야기의 합류」는 당시 많은 신학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줬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는 한국의 민중신학의 과제가 한국의 민중전통과 기독교의 민중전통을 합류시키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민탐 77-8). 그럴 경우 민중해방 전통이 가장 중심에 놓여 있고, 성서는 이를 위한 일종의 참고서 정도의 의미만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 기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 곤혼스러움이 놓여 있는 것이다.[12] 물론 이것은 다른 종교문화권에 자리한 민중전통과도 합류가능할 수 있다고 보기에 이 때의 민중신학은 종교다원주의적 성격마저 확보할 수 있는 해석학적 지점이기도 하다.

 
7. 서남동의 민중신학과 맑스주의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맑스주의를 전제한 것인가? 사실 나는 이에 대해 답변하기가 참으로 곤란하다. 왜냐하면 나는 심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은데,[13] 실제로 기술된 그의 신학적 언명들은 맑스주의적 시각과 너무나도 친화적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될 수 없는 사실로 봐진다. 다만 무언가에 대한 결정론적 시각은 나름대로 경계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있다(민탐 198).[14]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남동 신학에 대한 평가가 각자 다양하고, 1세대 민중신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가지가지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1세대 그 자신들이 전제하고 있는 형이상학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의 부재와 관련한다.[15] 그래서 나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포함하여 특히 1, 2세대 민중신학의 성격을 규정할 때 “민중신학은 그리스도교와 맑스주의 사이의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신학”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점에서 서남동은 그 자신을 <크리스찬 맑시스트>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답변은 언뜻 시원한 대답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나로썬 늘상 얘기하고 또 얘기하지만 그리스도교와 맑시즘의 만남은 단지 프락시스 안에서만 합의를 맛보는 평행선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8. 미완의 서남동 신학
 
대체로 많은 이들은 그의 신학적 여정의 끝에 비로소 쌓아 올린 것이 <민중신학>이라고 보는 듯 하다. 실제로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싶다(민탐 182). 하지만 여기에는 괴리가 있다. 사실 『전신』에서도 서남동의 신학은 미완으로 끝났었다. 갑작스럽게 분출된 시대적 정황으로 인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강단을 떠나 <방외인>으로 나가게 된다. 그는 다시 연구강단에 복귀하게 된다면 떼이야르의 진화론과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에 의해 촉발된 과정신학, 과학과 종교의 합일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전신 8). 그러나 그러한 미완의 신학적 작업들을 잠시 덮고서 그는 신학담론의 외부에서 날라온 충격을 감내하기 위해 한국의 역사적 민중적 상황에 잠입하여 이른바 <민중신학>의 탐구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남동의 신학 순례는 거기까지였다. 안타깝게도 그만 돌아가시고 만 것이다.
 
그래서 서남동에게는 미완으로 남겨 놓은 신학적 순례가 있다. 바로 『전신』에서의 서남동 신학과 『민탐』에서의 서남동 신학을 정합적으로 종합하는 신학적 작업이 그것이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서남동이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했어야만 했는데 이를 미처 하지 못하고, 이후의 후학들에게 남겨놓은 미완의 과제였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전신』에서의 서남동 신학과 『민탐』에서 서남동 신학을 뿌리깊게 고찰했더라면 그것이 일관된 흐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했다. 『전신』에서의 서남동 신학은 그 자신의 신학형성이 걸어온 길이었다. 『민탐』에서의 서남동 신학은 그 자신의 신학형성에 따른 내부적 요인이 아닌 당대의 민중사건에 대한 신학자로서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민탐』의 글은 결코 정리된 글이 아니다. 『민탐』은 피폐한 민중사건과 현실에 대한 충격을 경험하고서 무언가 주체할 바를 몰라 쏟아낸 글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번뜩이는 그 자신의 영감과 신학적 감수성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단지 『전신』에서의 서남동 신학과 『민탐』에서의 서남동 신학에 무언가 공통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그 어떤 충격에 따른 실존적 솔직함으로서의 반응을 들 수 있을 뿐이다.
 
『전신』에서의 서남동 신학은 대학강단으로 다시 복귀한다면 자연신학, 과학신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연구의 끝자락은 분명 떼이야르 샤르뎅의 진화론적 사상과 과정신학 연구에서 멈추어 있다(전신 8). 사실 그가 이미 1970년도에 일찍이 당시로서는 생소하리라고 봐지는 생태신학과 환경문제를 언급한 글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기까지 하다.[16] 어떻든 그의 내부적인 신학적 순례는 거기까지였고, 그는 다시금 신학 외부 진영에서 날라든 충격에 의해 민중신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서남동의 신학은 그 자신의 고백에서 말하듯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의 가장 큰 전환점이 당대의 민중사건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9. 나오며
 
사실 나에겐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을 뒤엎는 새로운 민중신학적 작업이 있다. 그것은 이제 와서 새롭게 보이지만 결국은 서남동이 궁극적으로 가고자 했던, 당시의 시대적 절박성으로 인해 미완으로 남겨놓았던 신학적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즉, 서남동은 그의 생태학적 자연신학과 민중신학의 종합을 이루진 못하고 그만 일찍이 돌아가셨던 것이다. 생전에 그는 세계 신학의 대부분의 조류들을 훑어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서남동 신학의 가장 큰 한계는 『전신』과 『민탐』의 괴리에서 빚어진다. 그의 미묘한 신학적 여정은 결국 이 둘을 올곧게 종합하지 못한 채로 마감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그는 그 자신의 민중신학 혹은 전체 민중신학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조차 시도해보질 않았었다. 만약 했었더라면 그는 분명 무언가 민중신학에서 부정합성을 느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기 하기엔 당시 시대가 너무 암울했고 절박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임성을 1세대가 아닌 이후의 민중신학자들에게 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왜냐하면 1세대는 그 발견만으로도 위대한 것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이 1세대 민중신학의 신학적 성과 그 이후를 조금도 넘어서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서남동은 떼이야르의 신학사상 정도는 섭렵했다고 봐지지만 화이트헤드와 과정신학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봐진다. 특히 그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과 민중신학을 연관시켜 민중신학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을 시도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은 참으로 두고두고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더 그가 화이트헤드를 깊이 탐독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김경재 교수에게 이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김경재 교수님에게서 들은 바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화이트헤드 철학과 과정신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는데 그만 뜻을 다 이루진 못하신 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당시로썬 국내에 극미하게 논의된 과정신학이었건만, <신학의 안테나>라고 불렸던 그는 과정신학이 민중신학엔 없는, 민중신학을 채워줄 만한 무언가가 과정사상에는 분명히 있다는 것만큼은 그 분 또한 직감으로 느끼고 계셨던 모양이다. 나는 이 분이 현재까지 살아계셨더라면 민중신학의 행보가 결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가진 않았으리라고 보는 사람이다. 제2의 서남동이 아쉽기만 하다.
 
 
....................................................
 
각주

[1] 김경재, "죽재 서남동의 신학사상", 『신학사상』46호·1984년 가을. p.487-490.
 
[2] 강원돈, "죽재 신학의 주제와 방법", 『신학사상』70집·1990 가을, pp.806-807.
 
[3] 박성준, "민중신학에 있어서 한국적이란?", 한국민중신학회 편,『민중신학』창간호 1995, pp.177-178.
 
[4] 박재순, “1세대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편, 『기사연무크1』, 민중사, 1988. p.85.
 
[5] 채희동의 이 저서는 나름대로 서남동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에 따른 신학적 담론들을 요약해서 잘 보여주고 있지만, 생명신학에 대한 그의 관심사가 서남동 신학에 대한 평가 곳곳에 지나치게 배여 있는 감이 없잖아 있다. 결국은 서남동의 신학을 과도하게 민중생명신학으로 이끌고 나가는 해석을 시도한다(채희동,『민중 성령 생명』[서울: 한들, 1996] 참조).
 
[6] 김경재는 민중신학의 신관이 과정신학적 신관과 닮아있다고 말한다(민영진·전경연·장일조·김경재 지음, 『한국 민중신학의 조명』[서울: 대화출판사, 1984], p.1. 참조). 이것은 내가 보기에 1세대 민중신학과 동학과의 유사성에 따른 해석으로 봐진다. 실제로 동학사상은 과정사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한국의 동학사상과 과정사상의 비교고찰에 대해서는 김경재·김상일 편저, 『과정철학과 과정신학』[서울: 전망사, 1988] ; 김상일, 『수운과 화이트헤드』[서울: 지식산업사, 2001] 참조).
 
[7] 김명수, "민중신학의 해체주의적 경향", 『기독교사상』, 대한기독교서회, 1994년 11월호.
 
[8]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난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1세대 민중신학에 대한 다층적 해석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민중신학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세계관의 정합적 정립이 부재함에서 오는 모호함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은 그 자신들의 민중신학이 곧바로 실천적 현장에 투입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시류적 현상에 대한 분석이 압도적 우세였으며, 저 깊은 심지의 철학적 기초 토대는 그만큼 도외시되었던 것이다. 1세대 이후에 드러났던 지지부진함과 그 갈등들-민중교회와의 갈등도 포함하여-은 바로 그러한 철학적 토대의 부재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9] 이러한 충격의 효과가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는 특히 현영학씨의 글에 매우 잘 드러나 있다. 현영학, “민중․고난의 종․희망”, 『1980년대 민중신학의 전개』(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pp.11-23.를 보라.
 
[10] 언젠가 기술하겠지만 그 금맥의 진원에 대해 처음으로 고찰했던 민중신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강원돈이다.
 
[11] 김진호, "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시대와 민중신학』3호, p.26.
 
[12] 예전에 3세대 민중신학에 있어 양권석이 제시했던 <상호 텍스트적 성서해석>이라는 것이 있다. <상호텍스트>라는 명칭에서도 이미 암시하고 있듯, 이것은 소위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이 깔려있는 해석학적 개념이다. 그렇기에 <상호 텍스트적 성서읽기>라는 의미는 <탈경전적 성서해석> 혹은 <해체적 성서읽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 싶다. 그런데 대체로 3세대 민중신학자들은 서남동의 <두 이야기의 합류>가 바로 이러한 <상호 텍스트적 해석>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양권석, “한국적 성서읽기의 방법으로서 상호 텍스트적 성서 해석의 가능성”, 『시대와 민중신학5』[다산글방, 1998], p.245. 참조). 물론 언뜻 생각하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실상 서남동의 <두 이야기의 합류>에서도 경전적 텍스트가 어떤 것인지는 이미 전제되어 있다. 즉, 그것은 <민중해방>이라는 틀을 통해 다른 전거들을 살펴볼 뿐인 것이다. 달리말해 서남동의 성서읽기 또한 <상호 텍스트>가 아니라 어떤 관(觀)에 따라 성서와 세계를 볼 것이냐는 그 차이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사실 <상호 텍스트>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모순을 함의한 개념이다. 이것은 <상호 참고서>라는 말도 가능하고 <다경전적>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본문과 역사적 상황간의 다양한 의미 발화는 두말하면 잔소리로서 이를 무시하거나 도외시해서도 안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언제나 받아들여지는 자에겐 그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터득된 중심적 시각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불가피한 현실임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아닌 말로 1+1=2와 1+1=3 둘 다를 똑같은 비중으로 동시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태를 떠올려본다면 참으로 우스운 것이잖은가.
 
[13] 장일조 또한 서남동을 맑스주의와 굳이 연관시키지 않은 것은 단지 그의 심증적 언급이었을 따름이다. 사실 장일조 만큼 민중신학의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학자도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는 민중신학이 전제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한계를 (드문드문이나마) 지적하고 있을 뿐더러 민중 역사 주체론의 허구성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일조, “죽재를 위한 하나의 대화”, 전환기의 민중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p.141-163.
 
[14] 좌담, “한국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의 과제”, 『신학사상』1979 봄호, p.11.
 
[15] 앞서 금맥의 진원 운운한 바 있지만, 바로 민중신학이 내포하는 형이상학적 입장 표명을 최초로 정립하고자 했던 학자는 강원돈이었다.
 
[16] 서구지성사의 맥락을 보면 환경생태문제는 근대화 이후에 들고 나온 얘기였다. 왜냐하면 환경생태문제는 자연을 대상화하고 정복하고 마구 개발해왔던 근대세계가 남긴 부작용과 휴우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남동이 당시 한국의 박통식 근대화 시절에 이러한 담론을 소개한 것은 참으로 앞서나간 것이기도 하다. 자연환경이 오염된 사례들을 비일비재하게 보는 21세기 오늘날에 비하면 당시의 1970년대만 해도 한국의 자연환경인 금수강산이 파괴된 사례는 극소하잖은가.
 
(2002.12)
 
 
 
 
 
2003-01-01 22:50:53  203
 


게시물수 61건 / 코멘트수 5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6 증보판) 출간~!! (2) 관리자 112043 10-25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373 08-08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770 07-10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775 04-29
61 민중신학 대부의 아내, 박영숙 선생 별세 관리자 5533 05-21
60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민중신학은 지금도 유효” 관리자 5517 04-25
59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기독교 해방주의와 민중신학 비판 (1) 미선 7153 01-27
58 홍인식 목사 “해방신학은 행진 중” 관리자 7071 12-08
57 민중신학과 강원돈의 신학 미선이 7299 08-07
56 “민중신학, 상황신학으로 규정할 수 없어” (1) 관리자 9727 01-01
55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미선이 6752 05-11
54 [출간소식] 김명수,『큐복음서의 민중신학』(도올 김용옥 서문 | 통나무) 미선이 7140 07-07
53 故 강희남 목사의 유서…'파장' 예고 미선이 7345 06-07
52 [출간소식] 권진관 『성령과 민중』(동연) (1) 미선이 7380 05-12
51 인도에서 떠오르는 '달리트 신학' 미선이 7100 04-21
50 예수는 민중이란 것에 동의하지만…민중이 예수일까? 미선이 5838 04-08
49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에 담긴 에큐메니컬 정신 미선이 5954 03-02
48 "인민신학+민중신학=통일신학" 노정선 교수, 한국민중신학회서 주장 미선이 8633 05-26
47 권진관 교수의 민중신학과 화이트헤드 철학 이해에 대한 비평 (1) 정강길 8481 04-20
46 새로운 민중신학의 이름, <살림신학> (3) 정강길 7843 01-20
45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사업회 및 학술제를 다녀와서.. (1) 정강길 9545 10-16
44 부르조아의 하나님 : 낙타와 바늘귀, 자본주의, 제국주의 (2) 리옌화 8427 07-14
43 [펌] 깨달음의 사회화 (박재순) 정강길 8576 04-09
42 "손해보고 살자" (광주 연합예배) (6) 정강길 9022 09-11
41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정강길 7347 04-01
40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에 대한 엄밀한 고찰 정강길 7934 03-09
39 학문은 쉬워야 함에도 요구되는 '불가피한 아카데믹함'이란? 관리자 14269 02-22
38 혀짤리고 귀먹고 화상당한 우리의 늙으신 하나님을 아시나요? (최형묵) 정강길 9257 02-01
37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운 사람, 송기득 교수 (정용섭) 정강길 8633 01-30
36 이론과 실천의 함수관계 (* 신학과 삶의 관계) 정강길 7837 12-16
3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후기 (2) 해조 8285 12-11
34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820 12-01
33 한국 기독교 신학의 전개과정과 새로운 전환의 신학 정강길 6479 11-14
32 정강길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을 읽고 나서 (Dong-Sik Park) (2) 관리자 9311 10-27
31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6 증보판) 출간~!! (2) 관리자 112043 10-25
30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정강길 7487 10-25
29 지구화 시대의 민중신학을 위하여~!! 정강길 7550 10-18
28 한국 민중신학자 대회를 다녀와서.. 정강길 6985 09-21
27 일반인과 자각인의 욕구와 영성 (7) 정강길 7260 09-02
26 [펌] 내 신앙의 근본을 뒤흔든 그 말, 민중신학 (정병진) 정강길 7241 09-02
25 책을 읽고.. (김광현) 관리자 6600 09-02
24    이하 광현님과 토론글 모음.. 관리자 7078 09-02
23 민중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과정철학적 관점에서 (장왕식 교수) 관리자 7737 09-02
22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5)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③ 정강길 7726 08-14
21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4)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② 정강길 7123 08-14
20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3)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 <만무>滿無 full naug… 정강길 7796 08-14
19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2) - '영성수련'이란 <공부>工夫, Kung-Fu를 말한다! 정강길 7984 08-14
18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1) -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정강길 12242 08-14
17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373 08-08
16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770 07-10
1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정강길 6917 07-10
14 민중신학과 철학(형이상학)에 대한 문제 정강길 7490 06-17
13 '민중신학연구소' 진영과의 민중론 논쟁글 모음 정강길 7573 05-20
12 ‘다른 관심ㆍ다른 이론적 틀’ 로 논의 "현재 민중신학이 처한 상황과 문제점" (1) 구굿닷컴 7946 05-06
11 [쟁점] 비평 - 맑스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11) 정강길 8799 05-06
10 새로운 민중신학에서 <민중> 개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195 05-06
9 기존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에 대한 의미 정강길 7297 05-01
8 서남동 신학,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9041 04-30
7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775 04-29
6 서남동, 화이트헤드를 만나다.. (5) 정강길 8214 04-28
5 민중사건 그리고 계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7416 04-28
4 화이트헤드에 기반한 사회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하여.. 정강길 7808 04-28
3 민중신학이여.. 제발! 제발! 제발! 미선이 7977 04-28
2 [탈/향 강좌]민중신학 vs. 민중신학, 성서를 읽는 천 개의 눈 (1) 정나진 15080 04-27
1 21세기에도 민중신학은 여전히 표류할 것인가..!! 미선이 16876 04-21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