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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부르조아의 하나님 : 낙타와 바늘귀, 자본주의, 제국주의    
  글쓴이 : 리옌화 날 짜 : 07-07-14 10:39 조회(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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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하나님 : 낙타와 바늘귀, 자본주의, 제국주의


1. 바늘귀 : 부자는 정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가 10:25)


예수의 이 같은 말씀은 실제적으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일까? 당시의 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지배체제를 구성하고 있었고, 또한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돈을 좋아했었다(누가 16:14).

어떤 면에서 재물을 많이 가지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그럴수록 타락해질 가능성은 더욱 넓어지고 높아진다는 점에 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재물을 많이 가질수록 삶을 해치는 유혹들도 점점 비례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을 경우는 욕망의 실현 가능성들이 현저히 줄어들지만, 돈이 많을 경우 욕망의 실현 가능성들은 현저히 높아지기 때문에 인간이 종교적 성찰이 되어 있지 않을 경우 당연히 더 큰 전체 세계를 보지 못하고 그저 자신과 자기 가족들의 안녕들만을 생각하기 쉽지 않을까 싶다.

복음서에서 부자를 긍정적으로 기술한 경우도 있긴 하다.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와 예수를 장사지냈던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하였으며 아리마대 요셉 역시 예수의 제자였을만큼 헌신적이었던 걸로 보인다(마태 27:57).

예수는 떠돌이적 생활을 했지만, 나름대로 그에게는 일말의 후원 구조도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예수공동체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따랐던 이들은 남성 제자들보다 여인들이었다.


2. 자본주의와 하나님 나라

자본주의는 인간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다. 따라서 근원적으로 자기 욕심의 발로들이 난무하게 되는 체제이게 된다. 하지만 사적 소유는 적어도 생존의 영위까지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시 유대 팔레스타인 땅의 민중들도 생존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한 사적 소유욕을 가졌을 것임에도 예수는 이에 대해 꾸짖거나 하질 않았었다. 오히려 그들의 무거운 삶의 질고를 쉬게 해주고 싶어 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적 소유욕이 생존 가능의 정도를 훨씬 넘쳐서 다른 사람들도 정당하게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의 토대들마저도 자기 것으로 빼앗고 결핍시켜버리는 데에 있다. 그럼으로써 힘의 역학 관계가 생겨난다. 자본주의는 바로 그러한 성격에 딱 부합되는 체제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성격에 대비된다. 그것은 영성적 깨달음에 기초된 삶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물적 토대들을 서로 간에 공평하게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가 실현된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정신적 고양만 추구하진 않다. 궁극적으로 나아가는 하나님 나라는 삶의 물적 토대의 공평화와 함께 나아가는 정신적 상향의 추구이다. 따라서 결코 공허하지 않다.


3. 제국주의와 하나님 나라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와 궁합이 잘 맞을 정도로 세속적 힘에 기초한다. 현대에 이르러선 정치적 충돌에 따른 물리적 전쟁으로서만 제국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세계의 네트워크를 지배하거나 정보들을 독점함으로써 전능한 힘을 과시하는 비가시적 제국주의를 진행시킨다.

미국을 비롯하여 소수 민족들을 억압하고 있는 강대국들은 아무래도 세계 안에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지배적 역할을 쉽사리 다른 나라들과 공유하거나 내어주려 하진 않을 것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당시 팍스 로마의 치하에서도 위협적이었을만큼(군대 귀신의 추방, 십자가 처형 등)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의 현실 앞에서도 충분히 저항하고 위협적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힘의 균형적인 성장을 지향한다.


4. 부르주아의 하나님

부르주아의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풍요의 신이자, 전능한 신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또한 배타적인 상대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전능한 힘으로서 제압 가능한 신일 것이다.

『미래에서 온 기독교』라는 책에 보면,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라는 표현이 있는데, 부르주아가 믿는 하나님은 결국 하나님이라기보다 <힘>이 아닐까 싶다. 부자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실체가 결국은 <힘>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이유도 무기력하거나 나약해서가 아니라 바로 전능하고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세계 안의 부르주아들도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군사독재 체제하의 박통식 경제발전이 진행되던 70년대와 그리고 전두환 군사독재 하의 80년대에 기독교 인구의 성장 그래프가 거의 수직상승 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5.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

예수는 세 가지 시험을 받았다. 그것은 경제적 물질, 명예, 권력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깨달은 자라고 해도 죽기 직전까지 찾아오는 시험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예수는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밥상공동체를 꾸렸다. 내적으론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토대로 하고 외적으로는 당시 부조리한 지배체제에 저항했던 것이다. 자신의 생활반경을 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 전초기지를 통해 외적으로 당시 지배체제와 맞섰던 것이다.

인간들에게는 식욕 성욕 수면욕 혹은 안전 지향 욕구 등등 다양한 욕구들이 있을 것이다. 이때 인간들은 적어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서야 주위를 둘러보며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삶에 욕구를 가지게 되는 측면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언제나 물적 토대의 나눔과 정신적 성찰의 공유를 항상 추구하도록 채찍질해야 할 것인데, 이것은 내 삶의 모든 제반적 환경들도 함께 변해야 함을 동반한다. 바로 그래서 예수의 공동체 같은 공동체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눔과 섬김의 그 공동체 안에서만큼은 자본과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자기 삶의 방어막이요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자녀의 교육 문제도 공동체 운동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수 있다.

현대에서 대략적인 최저생계비가 1인 42만, 4인 가족 120만 정도라고 한다. 좀더 느슨하게 잡아서 1인 70만, 4인 200만 정도로 잡는다고 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는 (적어도 종교적 결단과 헌신의 자세만 있다면) 그다지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하진 않다. 이미 세계 안에는 그리고 국내에도 약간은 이를 실현하는 공동체들이 있다. 소득을 공동 소유하고 공동 분배하는 공동체로서 살 수 있는 실험적 모험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세계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선 끊임없이 저항할 수 있도록 기반이 되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 나라 운동 자체가 오늘날의 우리가 섬겨야 할 하나님이 아닌가 한다. 부르주아의 하나님은 바로 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충돌할 것이다.


정강길 (07-07-16 00:58)
 
좋은 자료에 감사~^^*

오클로스 (08-01-30 17:15)
 
이미 자본의 맛을 한 번 본 기독교는 결코 포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본이 주는 매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알아버린 이상은 죽어도 자본주의와 이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요! 어림없지요. 하느님과 천국 조차도 이미 자본으로 매수를 해버렸는데 무엇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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