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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4)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②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8-14 17:51 조회(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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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②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는 바로 <만무>의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한다.. 그것은 나의 욕구와 하나님의 욕구가 언제나 합일되는 차원이다.. 이 같은 도달점에 이른 사람은 그 자신의 삶 자체가 사랑이요, 진리다..
 
이에서는 무슨 '실천적 방법론'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그 어떤 인위적인 것도 필요치 않다. 이미 하나님과 근원적 합일을 이루고서 서로 교통하고 있는데 이에서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사람은 그저 살아가면 될 뿐이다. 단지 죽고 사는 것을 하늘에 맡기고 유유히 자신의 삶을 흘려 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 그 자체의 삶을 사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의식 속에는 ‘나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라는 생각자체도 없다고 본다.. 이미 그의 삶의 본성자체가 그 쪽으로 흘러나가고 있을 뿐인 것을.. 그에게 있어서는 사랑이 그저 일상의 습관과도 같은 것이거늘, ‘나 자신이 사랑이라는 고원한 이상을 실현 한다’는 그런 의식조차 없다고 본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아(無我)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주님의 삶은 그 자체가 사랑이었다. 거기에는 저급한 에고가 들어서지 않는다.. 행동 속에서 전체가 되는 것은 바로 행동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그렇기에 <만무>에서는 습관적 사랑이 완전하게 굳어진 행태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 그 이상의 것에 속한다.
 
불교 탄트라(Tantric Buddhism)에도 자연스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충동적인 자연스러움>과 <자각적(自覺的) 상태로서의 자연스러움>이 바로 그것인데, 이 또한 무(無)의 두 가지 차원을 구분하면서 만무를 지향하는 나의 논의와 상치되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에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은 내가 곧 전체가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나의 전체를 던져서 하라. 몰아일체(沒我一體)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하라는 얘기다.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러면 그대는 사랑 그 자체가 되어라.
내가 서 있는 자리인 <지금 여기>에서 그 자신에게 맡겨진
세계 안의 고통받는 우선적 생명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집중시켜 흔적도 없이 자신을 산화시켜라..
 
모든 자각은 우주적이다. 그러나 자각이 없는 것은 에고적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나와 이 우주가 하나로 파묻힐 때 나올 수 있다. 그러한 자연의 궁극적 본성은 포용적 합일이지 파괴적 배제가 아니다. 암컷이 수컷보다 강한 이유는(혹은 <부드러움>이 <곧음>을 이기는 이유는) 그것이 대상을 공격하는 차원이 아니라 대상을 감화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내 안에 온 우주를 담을 수 있게 된다.
 
요컨대, 자각된 자의 투쟁이란 바로 다음과 같다.
 
세계 안의 고통받는 우선적 생명들을 향해 우선적으로 편들되 그 적대세력들에게는 항상 열려있는 평화적 자세로 맞서 있다. 특히 <만무>에 이른 자는 이미 죽음마저도 초탈한 자이기에 세계 안의 악이 일삼는 죽음의 창 끝 앞에서조차 빙긋이 미소로서 대할 수 있다. 실은 이것이야말로 세계 안의 악의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투쟁 중의 투쟁>인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中에서
 
 
 
 
2004-01-28 04: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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