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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4-01 21:15 조회(7347)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82 




 (* 예전에 새길교회에서 했던 주일예배 설교인데 옮겨왔습니다..)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이사야 11:6~9, 마태복음 6:31~33]
 
 
 
 
이사야 11장 6-9절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장 31-33절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 
 
우리는 삶의 중심적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오늘 말씀은 역사적 예수의 확고부동한 주제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의 성경말씀을 보면, 교회를 좀 오래 다니신 분들에게는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한 감이 없잖아 있는 성경본문이자, 오늘의 말씀증거 제목 또한 너무 유치하고 또는 진부하게 들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정말 이 하나님 나라야말로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세간의 기독교 서적 베스트셀러 가운데, 릭 워렌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The Purpose Driven Life)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기독교 베스트셀러에는 보수 근본주의 서적들이 많은 것처럼 릭 워렌의 이 책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제가 우연히 이 책에 관심한 것은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책의 제목 때문입니다. 릭 워렌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목적>이란 개념의 그 궁극적 실체는 결국 <기독교 교리>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 목적의 실체가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고 한다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이 문구는 솔직히 제가 추구하는 신앙과도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삶의 목적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과 현재의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작게는 하루의 일정이나 계획이 여기에 속할 수 있겠고, 크게는 인생의 꿈이나 야망 혹은 장래희망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작은 목적>들은 결국은 인생의 <큰 목적>에 따라 조정되기도 하기에 그 중요성은 당연히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목적이 일 중심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가족이 중심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친구가 중심인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이 중심인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삶의 목적을 아직 정하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기독청년학생 단체의 간사를 맡으면서 요즘 대학생들에게 네 삶의 궁극적 목적이 무어냐고 질문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은 답변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였고, 그 다음 답변은 ‘제 삶의 목적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요’였습니다.
 
삶의 목적들의 충돌과 이를 해결하는 가장 궁극적 사태로서의 하나님 나라
 
그런데 우리네 인생은 이것이 순조롭게 잘 안됩니다. 자아실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본적으로 처해 있는 각자의 삶의 여건과 기반들이 저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마다의 삶의 목적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나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목적과 충돌하여 둘 중 하나는 좌절하거나 해를 입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전두환의 삶의 목적은 광주사람들의 삶의 목적들과 충돌하며 이를 짓밟았습니다. <악>이란 것은, 서로의 삶의 목적들이 충돌함으로써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의외로 좀 간단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잘 먹고 잘 살자 라는 목적이 있고 또 이를 좋아한다고 봅니다. 솔직히 신앙인이든 비신앙이든 말이죠. 그런데 가장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른 사람과의 목적과 부딪히게 되면 나도 피곤해지고 다른 사람도 피곤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가장 잘 먹고 잘 산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가장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일말의 충돌 같은 삶의 피곤함조차도 있어선 곤란한 것입니다. 삶의 목적들이 충돌할 경우 실제적으로는 서로 폐가 되고 손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잘 먹고 가장 잘 살기 위해서는 나의 목적과 상대의 목적이 충돌나지 않는 그러한 상태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내가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1) 첫째, 모든 삶들의 목적들을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어야만 합니다. 동시에
2) 둘째, 모든 삶들의 목적들이 서로 충돌나지 않고 조화로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게 있을까요? 저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너를 위해서도 또한 하나님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최상의 길
 
전 세계 인구가 대략 60억이라고 할 때, 그럴 경우 우리에게 60억 명의 모든 삶의 목적들이 합리적이고도 조화롭게 조정된 새롭고도 거대한 세계의 목적을 한 번 떠올려봅시다. 그럴 경우 그것은 60억 명의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좌표점을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간주하면서 살아갈 경우,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도 가장 최상의 유익이 될 것이며, 전체 세계를 위해서도 가장 최상의 유익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좌표 기준점은 세계 안의 모든 개개인들을 고려한 것으로서의 <최선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우님들에게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먼저 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란 바로 이러한 성격의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60억 명의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살 수 있는 구원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그 말씀의 맥락이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걸 먼저 하라고 하셨는지를. 즉,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너희가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구원의 차원뿐만 아니라 물질적ㆍ정치적ㆍ경제적 그러한 차원의 모든 구원마저 포함한 총체적이고도 통전적인 차원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야말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올바르고 진정한 생존의 길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첫째 그 자신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것이며, 둘째 다른 사람을 포함한 전체 세계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며, 셋째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도 최상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나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의 일치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내가 가장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나의 나라>이자 <너의 나라>고 또한 <우리의 나라>이며,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의 욕구와 야망을 금지시키거나 버려라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나의 욕구와 야망을 <하나님 나라>라는 그 목적에만 맞춰달라는 종교입니다.
 

그것은 <나의 나라>이자 <너의 나라>고 또한 <우리의 나라>이며,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의 욕구와 야망을 금지시키거나 버려라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나의 욕구와 야망을 <하나님 나라>라는 그 목적에만 맞춰달라는 종교입니다.
 
▲ 하나님 나라는 너와 나 모두를 살리고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최선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우리 자신들의 하루의 일정과 계획, 혹은 일주일 스케줄 그리고 매월 또는 연간 계획 등등 이 모든 삶의 목적들보다도 가장 위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내 삶의 목적으로 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창세전부터 나를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나를 향한 계획을 두셨고 나를 향한 사랑을 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나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자신들의 하루의 일정과 계획, 혹은 일주일 스케줄 그리고 매월 또는 연간 계획 등등 이 모든 삶의 목적들보다도 가장 위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내 삶의 목적으로 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창세전부터 나를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나를 향한 계획을 두셨고 나를 향한 사랑을 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는 나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가능한 최선으로 <윈-윈 시스템>을 매사에 선택함으로서 이뤄나가는 하나님 나라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엄청 힘든 것 같지만,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삶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시간이 없어 짧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라는 게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지경에 있어도 결코 절대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그 선택의 자유를 고려할 때 가능하면 윈-윈 승승 시스템으로 가는 선택지를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사는 것이 가장 최상의 선택지를 택해나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처한 환경에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입니다. 요즘 비즈니스 법칙에서도 말하길, 성공 비결서도 보면, 이것은 매우 극단적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윈-윈 시스템이 더 좋은 비즈니스 효과를 창출한다고 하더군요.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러한 가운데 임하신 것이며, 점점 넓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즉, 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거기에는 그래도 나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여러 선택지들 가운데서도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는 윈-윈 시스템으로 가는 선택지를 택할 때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부터 충분히 작은 실천들에서 시작할 수 있는 차원이지요. 나만 이기고 상대는 지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습니다. 크리스찬의 윈-윈 시스템의 실제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윈-윈 시스템>을 선택한 실제 사례 하나
 
제가 아는 나이든 선배 한 분이 계신데, 이 분이 목회활동도 하지만 농사도 지으면서 농촌에서 살겠다고 이사를 갔었습니다. 근데 거기 농촌이란 곳이 아무래도 그 지역 사람들만의 기운으로 형성된 텃세라는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 선배도 농촌에 처음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보이지 않는 텃세 때문에 매우 마음고생이 심할 뻔 했답니다. 주말에 교회봉사하면서 평일에는 농사도 짓는데, 하루는 논에다가 물을 대면, 아침에 그 물이 옆집 논으로 가 있더랍니다. 옆집 논이 약간 층이 낮은 지대라서 몰래 옆에 물길만 살짝 터주면 그 물이 밤새 옆집 논으로 가게 된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이상하다 했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다시 논에다 물을 대고 잤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나보니까 아니나다를까 또 옆집 논에 물이 다 차 있거든요. 뭐라고 하려다가 그냥 참자 싶어서 다시 자기 논에 물을 대고 잤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나니까 또 옆집에 물이 다 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 선배는 화가 나서 생각하기를, ‘아니 교회 댕긴다고 사람을 이렇게 깔보는구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이니까 에이 참자’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자기 논에다 물을 대고 잤는데, 아침에 일나서 또 보니까 또 옆에 논에 물이 가 있거든요. 정말 화가 나서 못참겠다고 막 쳐들어가려다 ‘가기 전에 기도나 한 판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기도하고 나서 무슨 생각인지 한동안 갑자기 가만히 있더래요. 그날 이 선배는 어떻게 했느냐면 일단 옆집 논부터 물을 다 대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새 늦게까지 자기 논에 물을 대고 잤었습니다.
 
아침이 되니까 그 옆집에서 찾아왔어요. 혼자도 아니고 부부가 함께. 그러면서 그 남자분이 하는 말씀이, “실은 동네에 예수쟁이가 왔다는 소리 듣고, 그냥 한 번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었는데, 만약에 진짜 따지려고 올 경우 한 판 싸워보겠다고 생각까지도 하고서 미리 작정하고 있었는데, 저는 차마 선생님이 그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해심더. 솔직히 나도 사람인데 너무 미안하고 양심이 찔려서 도저히 못 있겠더라 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하러 왔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괜찮다면 제가 새로 이사오신 선생님한테 어떤 부탁을 하시던 딱 하나 정도는 들어주고 싶다. 나도 빚지고는 못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자. 이 선배가 하는 얘기가. “그럼 같이 교회 나갑시다.” 그랬답니다. 전도라는 게 정말 이런 게 전도 아닌가요? 사랑의 실천을 통한 자연스런 전도. 이 선배분이 여기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선택지는 윈-윈 시스템입니다.
 
제가 언젠가 “손해보고 살자”라는 제목으로 저희 교우님들과 같이 말씀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내가 먼저 손해를 보면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노동을 낭비한 것 같지만, 실제적 경제로는 이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고, 그럼으로써 돈보다도 귀한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손해보고 사는 삶은 실제로 손해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윈-윈 시스템'으로 인도하는 나라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저는 이 작은 실천은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도 작지 않다는 점을 더 크게 힘주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네 고물상하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분이 소박하게 하는 작은 실천은 고물상으로 번 돈으로 조금씩 고아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작은 실천인데, 이 아이가 자라서 위대한 인물이 되어 고백하기를,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준 결정적인 분은 나의 불우한 어린 시절에 함께 해주셨던 동네 할아버지였다고 말합니다. 자기를 괴롭혔던 그 옆집 남자는 지금 그 동네 교회의 장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나타날 런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세계를 바꾼 위인들의 위인전을 한 번 상세히 직접 뒤져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위인들이 세계 평화를 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동네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의 애정처럼, 어릴 적 옆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도시락이며, 친구의 변함없는 격려 한 마디이며, 말없이 건네주는 작은 편지 한 장입니다. 그 작은 물결치는 그 사건에도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바꾼 모든 위대함은 일상의 가장 작은 성실한 소박함에서부터 나옵니다.
 
실제로 과학의 법칙에도 <카오스의 법칙>이란 것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버터플라이 효과라는. 중국 상공의 나비의 날개짓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건너서는 폭풍우를 형성케 한다는. 즉, 초기조건의 미세한 변화가 결과적 산출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파생시킨다고 하잖아요.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카오스의 법칙에 대해서도 무려 이천 년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지극히 작은 겨자씨 하나의 믿음이라도 능히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라면 60억이라는 세계 인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생각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이것은 작은 일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이기에 그것은 큰 일입니다. 힘들고 부족하고 어려운 거 같지만, 매사에 조금씩 성실하게만 해나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잘 살려면 윈-윈 시스템에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한 윈-윈 시스템을 직장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운동장에서, 도서관에서, 집에서, 식당에서, 운전하면서... 언제 내가 어디에 있건 간에 가능한 서로 승리할 수 있는 선택지로 나의 목적을 거기에 맞춰나갈 때 60억 명의 모든 목적들이 조금씩 맞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윈-윈 시스템으로 인도하는 나라입니다.
 
<예수사건>이란 바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최상의 사건
 
이제 끝으로 누군가가 딱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렇게 윈-윈 시스템으로 자꾸 가다가 결국은 진짜로 손해보고 죽기라도 하면 어떻하냐구.. 위기의 순간에 정말 죽을 수도 있지 않냐구. 그건 정말 억울하지 않냐구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사건>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저는 자신 있게 증언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죽는다면, 그건 이미 예수따르미의 삶이라는 점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바로 죽기까지 손해를 본 억울한 죽음이었고, 제자들마저 나 몰라라 도망친 버려진 죽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렇게 죽으면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예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 영광이 예수의 십자가를 위해 죽는 것인데. 뭐 억울할 게 있나요? 바울 사도는 말씀하기를, 예수를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십자가가 수치일 수 있겠지만,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 십자가는 오히려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그 나라,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는 서로 부딪힘이 없고 더불어 조화하며 살아가는 상생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현재의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슴 속에는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서로 승승할 수 있는 60억 공동체까지도 늘 생각하시면서 내 삶의 선택지를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지속적으로 밟아나가신다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진짜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놀랍게도 우리의 올바른 응답으로 인해 하나님마저 살찌우게 하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바로 하나님 나라거든요.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이야말로 실로 예수님께서 전(全)인류의 구원 방법을 제시한 가장 탁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다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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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4)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② 정강길 7123 08-14
20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3)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 <만무>滿無 full naug… 정강길 7796 08-14
19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2) - '영성수련'이란 <공부>工夫, Kung-Fu를 말한다! 정강길 7984 08-14
18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1) -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정강길 12243 08-14
17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373 08-08
16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771 07-10
1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정강길 6918 07-10
14 민중신학과 철학(형이상학)에 대한 문제 정강길 7490 06-17
13 '민중신학연구소' 진영과의 민중론 논쟁글 모음 정강길 7574 05-20
12 ‘다른 관심ㆍ다른 이론적 틀’ 로 논의 "현재 민중신학이 처한 상황과 문제점" (1) 구굿닷컴 7947 05-06
11 [쟁점] 비평 - 맑스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11) 정강길 8799 05-06
10 새로운 민중신학에서 <민중> 개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195 05-06
9 기존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에 대한 의미 정강길 7297 05-01
8 서남동 신학,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9041 04-30
7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775 04-29
6 서남동, 화이트헤드를 만나다.. (5) 정강길 8214 04-28
5 민중사건 그리고 계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7417 04-28
4 화이트헤드에 기반한 사회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하여.. 정강길 7808 04-28
3 민중신학이여.. 제발! 제발! 제발! 미선이 7977 04-28
2 [탈/향 강좌]민중신학 vs. 민중신학, 성서를 읽는 천 개의 눈 (1) 정나진 15080 04-27
1 21세기에도 민중신학은 여전히 표류할 것인가..!! 미선이 1687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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