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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10-25 03:44 조회(7486)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59 




혹시나 어떤 분처럼 <백두근본주의> 운운하는 분들이 또 나와 같은 얘길 계속 반복할까봐서 이 점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말해두고자 올리는 글이다.
 
................................................................................
 
 

"오류는 교사다. 그것은 우리가 진보를 위해서 치르는 댓가이다." 
"오류를 놓고 두려워하는 것은 진보의 종말이다. 진리란 오류를 사랑하는 것이다."   -백두
 
 
 
 
근본주의란?
 
알다시피 일반적인 뜻의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란 20세기 초 근대 자유주의 기독교에 반대해서 일어난 미국의 보수파 신앙운동을 일컫는다. 이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그리고 자족적인 성격을 가진다. 근본주의를 어떤 때는 <고정주의>라고도 일컬을 만큼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입장은 고정불변 혹은 확고불변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른바 한 번 사과로 알아들었으면 영원히 사과이듯 말이다.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해 그것을 이미 전제로서 미리 깔고 이에 대해선 조금도 양보치 않고 무조건 확고불변한 것으로 보는 자세를 일컬어 흔히 <근본주의적 자세>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근본주의적 자세는 사실상 보수 진영에만 있지 않고 도처에 널려 있다. 전에 기독운동의 새로운 전환에서도 말했다시피 진보 진영에도 근본주의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딱지를 흔히 나한테도 붙여서 말하기를, “당신은 <백두근본주의>가 아니냐?”고 말한다. 물론 나 자신은 항상 그 위험성을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는 바지만, 이러한 속내를 외부에 있는 사람이 알 리는 만무하다. 왜냐하면 사실상 나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기독교도 그렇고 세계를 보는 모든 이해와 해석의 원리들이 화이트헤드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화이트헤드 전도사라는 표현을 듣기도 한다.
 
 
화이트헤드 <해석학적 툴>의 광범위한 영향
 
그리고 이것은 많은 부분에까지 적용되리만큼 매우 광범위하게 스며들 수 있다. 실제로 화이트헤드의 영향력은 철학 뿐 아니라 종교, 동양사상, 생태학, 여성학, 심리학, 경제학, 경영학, 교육학, 생물학 등등 너무나 많은 부분에까지 스며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화이트헤드의 철학(형이상학)은 모든 사항들의 밑변에 자리하고 있을 만큼, 존재를 내다보는 가장 기초적인 해석학적 툴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 자신이 화이트헤드의 해석학적 툴로 사용할 경우, 세계를 보는 이해나 신을 보는 이해나 뭐 이런 것들이 죄다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종교 신학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문 분야들의 개념들도 완전히 새롭게 뒤집어지는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물론 요즘은 양자물리학을 비롯한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철학적 성과들을 통해 어느 정도 화이트헤드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야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의 기운들도 많이 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화이트헤드와 연관되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예컨대, 근래 최신의 연구로서 많이 회자되기도 한다는 복잡계 법칙(실제로 이것은 과학과 경제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같은 것도 사실상 화이트헤드안이라면 이미 그 해석학적 툴에 오래전부터 담겨져 있음을 화이트헤드를 깊이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내가 볼 때 화이트헤드는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한편으론 든다. 그만큼 그는 난해한 철학자로만 알려져 있기에 서구에서도 오랫동안이나 잘 들여다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이나 그는 당대에 평가를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조금씩 평가를 받으면서 여전히 <미래에 해명되어야 할 철학자>로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근본주의는 오류 앞에서도 반성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점에 한 가지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앞서 비판했던 근본주의적 자세란, 명백한 오류 앞에서조차 그 자신의 입장을 계속 고집하고 바꾸지 않는다고 했을 때, 만일 현명한 사람이라면 명백한 오류 앞에서조차도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화이트헤드를 열심히 공부해봤는데 이 백두 녀석도 결국은 오류에 빠져 있다고 밝혀낸다면 나로선 정말이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을 정도다.
 
나는 그래서 가능하면 화이트헤드와 다른 사상가들의 이론을 대비시켜 서로 충돌나는 부분을 찾으려고 했었다. 맑스든 데리다든 들뢰즈든 레비나스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을 경우, 여지없이 깨어지는 쪽은 화이트헤드가 아닌 다른 이론들이었다. 적어도 내 경험상으론 그랬었다(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항은, 날 비판하는 사람치고 백두의 철학 내용 자체에 대한 비판은 없었을 만큼 백두공부는 잘 들여다보질 않았다는 사실). 아마도 이렇게 얘기하면, 그것은 그저 화이트헤드식으로 먼저 끼워 맞추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즉, 화이트헤드의 이론을 먼저 1차적으로 전제하고서 거기에 맞춰서 다른 모든 이론들마저도 2차적인 것으로 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일 게다.
 
아마도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때, 화이트헤드로 그것이 설명이 되는 경우와 역으로 그 이론으로서 화이트헤드가 말한 점을 설명해내고 있는지 즉 그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생각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즉, 우리 앞에는 계속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사건들이 있다. 이를 W라고 하자, 만일 우리가 A라는 이론과 B라는 이론을 비교한다고 했을 때, 이것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사례들과 비교하고 견주는 'A-W-B'라는 3자적 도식에서 두 이론의 설명력 우위를 논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들뢰지안은 말하길 이들의 사건론에서 <됨>이란 것을 <임>과 <임>사이를 빠져나가는 혹은 가로지르는 것으로서 말한다. 이것은 이들의 시각에서 나온 언술이지 내가 화이트헤드를 미리 전제하거나 한 것이 결코 아니다. 들뢰즈안의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 화이트헤드는 그의 사건론에서 <됨>이란 것을 말하길, <임>은 없고 오직 <됨>만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앞의 들뢰지안 얘기와도 명백하게 서로 상충하는 얘기다. 즉,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서로 충돌하고 있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일 <1+1=2>와 <1+1=3>을 동시에 한 머리에서 갖는다는 것은 웃기는 것이다. 물론 1+1=3도 완전히 거세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주도적인 입장을 말할 경우에는 어느 하나의 입장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합리성은 일관성을 내포하면서 모순을 극복하고자 할 것이다.
 
이때 나는 그 설명력의 우위에서 화이트헤드를 선택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현상(W)를 놓고 봤을 때 화이트헤드 쪽이 더 설명력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이란 것은 유동하는 사물에 있어서 사실의 영역에 속하기보다 이미 추상에 속하고 있다. 만일 <임>이 사물의 실재를 그대로 뜻하고 있는 거라면 그것은 이미 죽은 사물, 즉 그 어떤 지점을 꽁꽁 얼려놓은 사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들뢰지안들은 여전히 들뢰즈가 제시한 해석학적 툴로서 세계를 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본다. 유용성이 없진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설명되지 못하는 지점을 만났을 때는 나는 이 문제를 분명하게 숙고안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맑스든 들뢰즈든 레비나스든 무엇이든 어떤 점에선 또 화이트헤드와 양립가능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얼마든지 나 역시 이들도 중요하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명백히 충돌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이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지점들에 있어선 어느 정도 이론의 우위성을 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정체성에 입장에서 선택하는 문제와 근본주의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
 
이때 내가 화이트헤드를 택했다는 거 자체가 근본주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무뇌아적인 입장이란 없잖은가. 내가 화이트헤드를 택하고 있는 것은 내 사상의 정체성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이때 근본주의자라면 한 번 정체성은 영원불변의 고정된 정체성으로 못박겠지만, 나로서는 오류를 발견하지 않는 한에 있어선 한시적인 정체성일 뿐임을 분명하게 말해두고자 한다. 화이트헤드를 택했다는 것은 일단 사상적 정체성을 위한 선택의 문제에서 나온 것이지, 화이트헤드를 선택했다는 그 자체가 곧바로 근본주의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부디 화이트헤드의 오류를 발견하길 바란다. 진정한 진보는 오류를 발견함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도 덧붙여 기억하길 바란다. 그러나 오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한에 있어선 결국은 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
 
이미 화이트헤드 스스로가 그 자신을 포함해서 오류를 넘어서길 바란다는 것이다. (맙소사!)
화이트헤드 전체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그것은 단연 <모험>adventure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상의 생명력(vitality)은 <모험>adventure에 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평생을 두고 해 온 말이다. … (중략) … 관념은 끊임없이 새로운 국면에서 고쳐보도록 해야 한다. 어떤 참신한 요소를 때때로 그 속에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중지할 때 관념도 정지되고 만다. 삶이 의미하는 바는 <모험>이다(The meaning of life is adventure)"(Recorded by Lucian Price, Dialogues of Alfred North Whitehead, The New American Library, 1956,)
 
백두는 자신의 사상이 결코 영원하다고 보지도 않았으며, 만일 자신의 이론을 가지고서 설명되지 않는 사실이 발견될 경우에는 그 자신의 이론마저도 과감히 수정 또는 폐기처분하라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얘기는 매우 아이러니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화이트헤드를 철저히 따를 경우에도 이미 그 안에는 화이트헤드 자체마저 해체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백두근본주의>라는 것은 언제든지 백두 자신마저도 해체해버리는 위험성을 간직한, 참으로 아이러니한 근본주의라는 것이다.
 
명백한 오류 앞에서 여전히 백두의 입장을 고집한다는 것은 백두 자신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이 다른 이론보다 화이트헤드의 이론의 우위를 말했다면 그것은 화이트헤드 외의 다른 이론들에서 발견된 설명력의 저하 혹은 오류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 외에 서로 양립가능할 정도로 흡사한 데도 좀더 화이트헤드가 보다 유용하다고 본 경우는 체계 분석의 밀도 문제(민중신학게시판의 '왜 하필 화이트헤드인가' 글참조)를 제외한다면 그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그렇지만 자칫 나의 이런 얘기들이 화이트헤드만 공부하고 다른 이론들은 공부할 필요도 없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화이트헤드의 가치는 <모험>에 있다고 말했듯이, 나 자신 역시 분명하게 원하는 것은 세계 안의 다른 수많은 다양한 이론들과도 여전히 견주어 보고 끊임없이 넘나들며 사유의 실험들을 감행해보길 바란다. 가능한 우리는 수많은 다양성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 역시 화이트헤드가 원하는 바다.
 
 
웃기는 백두 교주
 
백두, 화이트헤드라는 교주는 참 웃기는 현재적 교주다.
왜냐하면 그 교주는 오류 앞에선 그 자신마저도 가차 없이 죽여 버리라고 주장하는 교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점에선 화이트헤드를 아직 모르는 사람이라면, 안심하고 화이트헤드를 덤비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정정당당하게 백두를 넘어서길 바란다. 백두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라. 바로 백두교주님의 말씀인 것이다.

 
"진리란, 온갖 다양성들의 대비(contrast)를 통한 통합의 차원에서 얻어지는 결정체다.
그렇기에 그것은 결코 온갖 다양성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거기에는 분명한 자기 확신의 줄기가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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