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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민중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과정철학적 관점에서 (장왕식 교수)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6-09-02 18:19 조회(7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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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길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4)에 대한 서평
- 『신학사상』誌 2004년 봄호, pp.255-260.참조
 
 

민중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과정철학적 관점에서
 
 
- 장왕식 (감신대 교수)
 
 
 
 
만일 한국의 신학을 대표하는 토착화 신학이 무엇이냐고 외국인이 묻는다면,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단연 <민중신학>Minjung Theology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었다. 당시 해외에서는 민중신학만큼 한국적 신학으로 알려진 신학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민중신학을 한국의 대표적인 토착신학으로 꼽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신학이 지속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중신학에는 그동안 그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기에 한국의 민중신학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보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정강길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은 1990년대 이후로, 민중신학이 어떤 이유에서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는지를 잘 분석해 주고 있다. 정강길에 따르면, 우선 기존의 민중신학은 너무나 정치․경제학적인 분석에만 기초해서 자신의 이론을 형성했던 까닭에 종교현장과 사회현장에 놓여있는 우리네 삶의 다양한 욕구들을 채우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대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북미 및 유럽의 흑인과 여성의 억압적인 상황, 그리고 그 밖의 바닥 공동체를 대변하는 사회분석 방법 등에 기초하다 보니, 민중신학의 방법론은 과도하게 유물론적이어 왔으며,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주로 사회경제사적인 분석에만 기울었다고 보는 것이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평가였기에 정강길의 이 같은 분석은 충분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이렇게 명백한 약점을 지니고 있는 민중신학이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 자연과학의 도전이나, 동양사상과 종교의 도전,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다원주의의 도전에 명쾌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 정강길의 분석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강길이 보기에, 민중신학이 하나의 신학으로서 노출할 수밖에 없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형이상학적 차원의 결여 또는 모호함’이며, 앞에서 말한 약점들도 사실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차원의 치명적 부정합성에서부터 기인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형이상학’이란 해석학적 존재론으로서 우주론cosmology과 존재론ontology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세계와 사물을 이해하는 가장 기초적 토대로서의 철학을 가리킨다. 사실상 기존 민중신학이 그토록 반대했던 서구 전통신학의 폐단도 결국은 서구 전통신학의 밑변에 정초된 플라톤적 관념론이라는 잘못된 형이상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구 전통신학은 그동안 세계를 보는 이해가 이원론적이고 비역사적이었으며, 배타적이었고, 지배이데올로기에 부합되는 남성적인 초월신관을 보여주었다는 얘기다.

정강길에 따르면, 신학이란 모름지기 신과 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게을리 할 수 없으며, 나아가 모든 학문과 더불어 간학제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신학은 어느 정도 형이상학적 차원의 기초적 사유라는 틀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의 기존 민중신학의 방향은 형이상학을 단순히 역사적 변혁에 거스르는 추상적인 사유노름으로만 보는 시각이 팽배했었기 때문에 형이상학 자체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이것이 지나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민중신학이 명료한 학문적 재정립을 뿌리내리지 못하고 당파적 신학으로만 전락되게 된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강길이 제시하는 민중신학의 대안은 무엇인가? 정강길 자신은 결코 민중신학을 버릴 생각이 없으며, 단지 기존의 민중신학을 해체한 다음 이를 다시 세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신학적 작업의 목적이라 한다. 여기서 그가 새로운 민중신학을 다시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작업 없이는 결국 세계이해와 사회변혁에 대한 온전한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만약 소란스런 현실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이를 잘 설명해내고 있는 설득력 있는 정합적인 형이상학이 있다면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민중신학을 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바, 그렇지 않으면 민중신학은 이미 밝힌대로 타종교와의 소통과 만남이나, 과학과 종교 간의 조화, 그리고 생태학적인 신학의 수립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정강길은 화이트헤드의 사유체계에서 그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적 차원의 웅혼한 사상이면서도 동시에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들과도 모순되지 않고 조화롭게 마련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동양 종교와의 만남에도 성공적일 수 있는 이론적 장치들을 갖추고 있기에, 새로운 민중신학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작업은 그 옛날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통해서 보다 명료하고 체계화된 기독교 신학을 건설하려 했던 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정강길은 말하기를, 자신의 신학적 작업은 그렇다고 해서 결코 과정신학으로 민중신학을 대체하려는 것이 본래의 의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과정신학은 나름대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한편 그것의 사회변혁적인 관점은 불철저하기 때문에 과정신학은 오히려 한국의 민중신학으로부터 그 자양분을 받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정강길이 본서를 통해서 꾀하고 있는 본래의 목적은 화이트헤드로부터 촉발된 과정형이상학의 도움을 통해서 기존의 민중신학을 비판적으로 재수립하려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더 나아가 오늘날의 과정신학에서 불철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회변혁성을 우리나라의 민중신학으로부터 보완하려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강길의 새로운 민중신학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을 그 기초에 놓고서 민중신학의 정치사회적인 전망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탄생시켜 보려는 야심 찬 시도라고 하겠다.

평자의 입장에서 정강길의 이런 시도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민중신학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형이상학적 차원의 결여 또는 모호함으로 인하여 그저 한 때 잠시 유행하는 신학, 그것도 제한된 당파성 내지는 특수성으로 전락된 데에 있다고 봤을 때, 민중신학자들은 그 자신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보다 분명하고 명료하게 함으로써 그 기초에서부터 튼튼히 하여 기존의 서구 전통신학을 뛰어넘는 새로운 신학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으며, 그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은 새로운 민중신학의 수립을 위해 하나의 효과적인 기초적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보편성의 가치가 무너졌다고 보거나 아니면 최소한 상대화되어졌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오늘날에 있어서 최신 형이상학에 기초한 새로운 민중신학을 건설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 시도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만일 민중신학이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당파성과 특수성에 만족하는 한 그 신학은 계속해서 오늘날 많은 다양한 그룹들의 외면을 받으며 점점 고립되고 게토화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 확실하다. 따라서 정강길과 같이, 하나의 작업가설적인 시도를 통해서 기존 민중신학을 넘는 새로운 민중신학을 수립하려는 신학적 작업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정강길의 이번 저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데 있어서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강길의 저서가 가지고 있는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하나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강길의 본 저서에서 우리는 이제 겨우 그 시작을 맛보는 서론적인 시도만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물론 하나의 형이상학을 이용해서 정치․경제학적인 신학을 수립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예측할 수 있는 바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강길의 저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 놓고 있다. 비록 본 저서에서는 대안적인 새로운 민중신학 모색으로서 그가 시급하다고 봤던 새로운 민중론의 정립과 민중신학의 영성론 그리고 교회실천론을 나름대로 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민중신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형이상학을 탈피하여 정합적인 형이상학에 기초된 신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구원론 등등 보다 분명하고도 명료한 신학적 작업과 성과들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강길을 비롯한 젊은 민중신학도들이 어떻게 이런 어려운 작업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기 위해선 우리는 또 다시 많은 시간들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나의 새로운 형이상학적 패러다임을 통해서 거듭난 민중신학은 정강길이 이 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의 문화신학과도 만나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 다원주의 신학, 생태학적 신학 등과도 새롭게 만나서 보다 심층적이고 온전한 의미로서의 포괄적인 <대안신학>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민중신학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전환으로서의 도약과 비약적 발전을 앞두고 있다고 하겠다.
 

 
 2004-03-23 08:44:04
 
 
 
..............................................................................................
 

 

서평에 대한 단상..
  
 
정강길 
 
 
 
 
개인적으로 필자의 졸저인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한
장왕식 선생님의 서평을 매우 고맙고도 귀중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적어도 장왕식 선생님의 서평은 나 자신이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기독교 신학이
참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매우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게 있어서는 기존 민중신학이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고 보고 있으며,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의 문제를 피해 갈 순 없다고 보고 있다..
기존 민중신학의 한계는 그 신학에 깔려 있는 사변적 구도의 한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기존 민중신학 진영은
여전히 그 근원적 오류 발생의 위기를 캐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정말 이 점만 해결된다면 내 저서의 의도가
절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라고 자평하고 싶을 정도다..
이 점은 기존 민중신학 진영이
매우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조차 못 읽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도외시되고 있는 상황이라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날 형이상학의 문제는 철학 진영뿐만 아니라
보다 실증적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윌러스틴(I. Wallerstein)이라는
사회과학자조차도 그 중요성을 일갈하고 있는 실정이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과학과 철학 사이의 단절이 결정적으로 되었을 때,
사회과학은 자신이 과학이지 철학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통탄스럽게도
지식을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분리한 것을 정당화한 논거는, 과학이 진리를
추구함에 있어 경험적이라고 생각된 반면, 철학은 형이상학적, 즉 사변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구분이었는데, 왜냐하면 모든 경험적 지식에는
피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토대가 있으며, 어떤 형이상학도 현세의
실재reality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입증되지 못하면-그것이 경험적 표지를
지녀야만 한다는 의미이다-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p.218.)

그렇다..!! 철학 진영 뿐 아니라 사회과학 진영에서도 일반화되고 있는 주장조차도
기존 민중신학 진영은 제대로 못보고 딴청만 피우고 있는 것이다..

내 저서의 반은 기존 민중신학의 이 같은 한계들을 폭로하는데 글을 쓰고 있고
나머지 반은 대안적 민중신학을 할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장왕식 선생님은 나의 새로운 민중신학이 이제 겨우
그 시작만 맛보게 한다고 하였는데
내게는 새로운 민중신학의 시작을 여는 것 자체가
기존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적 극복이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봤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겨우 그 시작을 틔웠다고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기존 민중신학의 형편을 볼 때 내게는
가장 시급한 것이 민중신학과 형이상학의 정립 문제였고
그 두 번째가 제대로 서 있지 못한 기존 민중신학의 민중론을
다시금 새롭게 확립하려는 작업이었다..

내가 장왕식 선생님의 서평 중에서 아쉬워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왕식 선생님의 서평에는 나 자신이 추구하는 대안적 모색에 있어서
새로운 민중신학의 민중론과
새로운 민중신학이 추구하는 신론
그리고 새로운 영성론, 교회 실천론 등등
이러한 대안적 모색으로서 신학이론에 대해서는
논의된 평가가 아예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분량으로 볼 때 저서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장왕식 선생님의 서평은
나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기독교 신학을 잘 설명해주고 있고
또한 이 점에 있어서 이제 그 시작이라는 평가는 정당하다..

나의 새로운 민중신학은 보다 합리적이면서
세계 안에 보다 유익하게 기여할 수 있는 조직신학적 작업
곧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예배론 등등
이러한 기독교적 유산들을 새롭게 재기술하여
이제 기존 기독교의 신학을 전반적으로 재구성하면서
기존 민중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서 새롭게 틀을 잡아나갈 것이다.

나의 새로운 민중신학은 가능한
세계 신학의 흐름에 있어서 첨단을 지향하며
가장 앞서나가고자 하는 신학,
곧 한국의 민중신학이 되고자 할 것이다..

여기에 기존 기독교 신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환골탈퇴를 원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동참을 바라는 바이다..
새로운 민중신학 역시 열린 신학으로서 다가고자 하기에..
 
  
 2004-03-28 03: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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