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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1) -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8-14 17:29 조회(12242)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25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1) -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개인적인 느낌일진 몰라도, 보수 진보를 망라해서 지금까지 기존의 영성에 대한 언급들을 대체로 보면, 다소 추상적이고 두리 뭉실한 얘기들이 많은 것 같아 조금은 구체화시켜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영성론은 기존의 민중신학에선 잘 논의되지 못했었다. 따라서 지금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영성이야기는 기존의 두리뭉실했던 영성에 대한 이해를 보다 더욱 구체화하고, 또한 기존 민중신학의 한계 역시 탈피하려는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이해로서 봐주었으면 한다.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란 무엇인가? 영성! 영성! 영성! <영성>이라는 이 말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신령한 품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인간성>이라고 봐도 좋겠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에게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의 인간 본성은 우리가 닮아야 되고 성취해야 할 그 '무엇'으로서의 인간성에 속할 것이다..
 
사실상 ‘좋은 인간성’이란 게 말이야 쉬운 얘기지 이것은 참으로 어렵게 성취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품안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의 본성'을 나는 영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람이 그 안에 교통하려는 본성이다.. 즉, 영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그 법도를 끊임없이 지키고자 하는 고위적 성질에 속한다..
 
 
하지만 아마도 여기까지조차도 영성에 대한 추상적 언급으로 보일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점들은 우리가 화이트헤드 철학을 안다면 어떤 측면에서 두루뭉술한 영성을 매우 실증적으로 얘기할 수가 있다..화이트헤드적으로 본다면 영성이란 신의 '원초적 본성'으로부터 매순간마다 개입하는 <최초의 지향>initial aim을 현실적 계기가 실현코자 하는 주체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혹시라도 화이트헤드 철학을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지 몰라서 이를 더 쉽게 얘기해보자..
 
신의 원초적 본성을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세계와 관계하는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이상이라고 봐도 좋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적 비전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싶다.. 이 세계에 대한 신 자신의 플랜(계획) 말이다. 이때 하나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적 목적’이 세계에 매순간 끊임없이 개입한다는 얘기다..
 
쉽게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흡사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지금 내 앞에 어떤 사람이 다쳐서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 이를 목격한 1초전의 사마리아인과 1초후의 사마리아인을 생각해보자..
 
이 순간 나는 전체 우주 한 가운데서 다양한 가능성을 택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나는 모른 척 하고 집에 갈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더욱 뻔뻔스럽게 쓰러진 사람의 지갑까지 털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주위의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아니면 직접 업고서 병원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그 어떤 행보를 택하든 간에 나는 이러한 여러 가능성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자 이때 내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이러한 순간의 판단이―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후행하는 전체 우주의 지도를 바꿔놓을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러한 수많은 선택적 상황에 대하여 똑같은 비중의 중요성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항상 최상의 선택으로 이끄시는 분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것은 세계와 관계하는 하나님의 '당파성'이기도 하다..)
 
사람이 인간의 의식에 결단을 내리는 계기는 <찰나>이다. 바로 그 현재의 찰나가 후행하는 전체 우주의 지도를 뒤바꿔놓는 것이다. 매순간순간 그 찰나 안에 하나님의 뜻이 개입하는데, 우리가 늘상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다름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앞에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선택지들 가운데서의 가장 최상의 선택지를 뜻한다.
 
그 선택지로 가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자, 전체 세계를 이롭게 하는 길이며, 동시에 그 사람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최선의 길인 것이다. <영성>이란 바로 매순간 그것을 쫓아가려는 본성을 일컫는다. 이것이야말로 <영성>개념에 대한 가장 적실한 이해라고 할 수 있겠다. (* 참고로 레클레어 같은 화이트헤디안은 이를 명시적으로 말한다. "각 특정한 현실적 존재에 대한 신의 주체적 지향은 그 현실적 존재에 있어서의 가능한 경험의 최고 강도intensity이다. 즉, 그 사례에 있어서 가치의 최대한의 실현이다. 그러나 가치 강도의 그러한 현실화는 그 현실적 존재만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신을 포함한 타자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화이트헤드 형이상학 이해의 길잡이』[이문출판사], p.277. )
 
경제학에 보면 행복지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고 한다..
행복지수 =충족시킨 욕구의 양/충족시키려는 욕구의 양×a (※a는 양(+)의 상수)
 
이처럼 만약 우리가 계기에 개입되는 영원한 객체라는 술어들.. 즉 선택지들을 상수로만 표현가능하다면 가장 바람직한 영성이 어떤 것인지 분별 가능할 수 있다.. 우리가 선택가능한 선택지들(‘중요성’의 등급으로부터 우선 본다고 할 때) 중에서 세계 안의 가장 많은 이들에게 행복지수를 줄 수 있는 그러한 선택지를 고른다면 적어도 우리는 최초의 목적에로 근접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 시간차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영성은 실제적으로는 엄밀한 합리성을 깔고 있다..
 
1초전의 사마리아인과 그 다음 행동을 위해 옮길 때 그 사이에 맞닥뜨리게 되는 선택지들에는 실로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다.. (사실상 이 선택지들은 화이트헤드에게서는 '현존의 범주'에 속하는 <명제>propositions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지들은 저마다 결코 똑같은 중요성의 등급을 가지지 않는다.. 신이 가장 소망하는 선택지는 언제나 그 가운데 항상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계 안의 오류와 비극이 곤고화될수록 그 선택의 여지는 갈수록 좁아질 것임은 자명하다.. 오늘날 민중을 엄습함에 있어 최악의 사태를 가정해본다면, 그것은 바로 <죽거나 나쁘거나>일 것이다.. 여기엔 실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사태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어렵고 궁핍한 이 시대에 한국 민중들의 자살들이 많은 현상들을 보노라면 거기에는 일말의 사회적 타살을 함께 고려해야 함이 마땅하다.. 기존 민중신학이 죄악으로 봤던 ‘구조악’이란 바로 선택지들의 범위를 제약하는 요소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결정자는 언제나 계기 자신의 결단에 뿌리박고 있다..
 
따라서 내게 매순간을 엄습하고 있는 선택지들에 대한 결단은 참으로 몹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후행하는 우주의 지도를 뒤바꿔놓을뿐더러 나의 결단은 타자에 대한 선택지들의 범위마저 제약하고 하나님의 계획마저 수정시킬 수 있다.. 따라서 너무나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영성이란,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소망스런 선택지로 이끄는 고위적 성질이다.. 하지만 이것이 힘든 이유가 여기에는 <타자에 대한 세계 분석>까지 요청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바로 늘 성실하고 바르게 순간순간을 참되게 살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에게 매순간 개입하는 선택지들의 다양성을 합리적으로 대비시키는 습관을 온몸으로써 향유하는 것이 바로 <영성수련>이요 <공부>工夫, Kung-Fu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성은 내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길을 걸어갈 때나, 똥을 눌 때나, 그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것은 언제나 늘 우리 자신을 최상급의 선택지를 향해 우리의 몸을 갈고 닦게 만들도록 추동한다.. ‘나’라는 존재는 그럼으로써 형성되어가는 '과정적 존재'이며, 그럼으로써 매순간순간을 늘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애쓰게 된다..
영성은 우리 안의 가능한의 최선이다..

하나님은 바로 이를 보고 계신 것이다..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참조
 
 
 
 2003-12-24 04: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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