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36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3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보수 근본주의
중간 복음주의
진보 기독교 진영
민중신학 & 살림신학
종교 일반 & 사회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569
어제 794
최대 10,145
전체 2,267,842



    제 목 : 21세기에도 민중신학은 여전히 표류할 것인가..!!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6-04-21 02:23 조회(16876)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2 





 

21세기에도 민중신학은 여전히 표류할 것인가

 
 
 
정강길
 
 


 

20세기가 지나가고 21세기가 이미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다. 2000년이 되자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신학사상」誌(여름호)에 '21세기와 민중신학'이라는 특집이 실렸다. 그러나 나는 그 글을 읽고 나서 오히려 민중신학이 처한 현실에 대해 더욱 참담한 느낌만 받았다고 말해야 될 것 같다. 도대체 민중신학은 언제까지 헤매고만 있을 것인가. 많은 식자들이 21세기 민중신학의 과제니, 희망이니, 새 지평 모색이니 하는 얘기들을 하는 것 같지만 실상 뜯어보면 예전에도 나왔던 얘기,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지리한 얘기들의 반복에 이젠 오히려 신물이 날 지경이다. 도대체 민중신학은 언제까지 표류할 것인가. 21세기가 왔건만 민중신학이 정작 달라진 건 무엇인가. 오늘날 민중신학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한 때 유럽과 미국의 유수한 신학대에서 정규과목으로도 채택될 정도로 이름을 날리던 민중신학의 그 화려한 영광의 흔적들은 이제 퇴락한 추억이 되버리고 말았다. 빛 바랜 사진 속의 액자처럼 민중신학은 민중신학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맘속에만 그저 덩그라니 걸려있는 느낌이다.

나는 민중신학 1세대야말로 섬광과도 같은 통찰력으로 한국 기독교계에 아니 세계 신학계에 엄청난 파워의 신학적 발견을 가져다줬다고 보는 사람이다. 민중의 하나님, 민중 예수, 민중의 발견, 그것은 잠자고 있던 나의 신앙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 참신한 해석은 기존의 안일한 삶을 절박한 민중의 현장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1세대는 그들 자신과 이들이 자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민중신학에 대한 학문적 체계를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채 지금까지 흘러왔다. 민중신학은 그 철학적 기초작업부터가 애초부터 되어 있질 못했었다.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한 부작용을 이후의 민중신학자들조차 전혀 제대로 바로 세우질 못했던 것이다. 이후의 민중신학은 결국 맑스주의와 친화적인 행보로 나가기도 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민중신학은 기독교 신앙과 맑스주의의 어정쩡한 중간 행태를 띠며 우왕좌왕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이란 게 이원론이라는 잘못된 관념론을 사유의 베이스로 하고 있었기에 비역사적이고도 배타적인 신앙으로 나타난 것임을 인지했었다면 민중신학 또한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 놓여있는 철학이라는 사유의 베이스를 점검하던지 아니면 다시 새로 정립하던지 그랬어야 했다. 한국 기독교계의 주류 신앙의 신학사상은 여전히 이원론적이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뻔한 것이다. 쉽게 말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온전한 조화다. 요컨대,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신앙과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한 해방을 지향하는 신앙을 조화시키기 위해선 관념론과 유물론이 통전된 새로운 철학사상이 민중신학의 베이스로 요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민중신학의 분위기는 형이상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부재했을 뿐더러 오히려 정치·사회·문화적 이슈들을 문제삼고 거기에 따라가기에 급급한 인상만 줬을 뿐이었다. 하나님과 나 자신의 관계와 나와 이웃 간의 관계를 막힘 없이 풀 수 있는 신학적 장치를 민중신학은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신앙과 사회변혁이 따로 노는 양극화 현상으로까지 치닫기 했다. 민중교회가 결국 민중신학에 대해 별 소득을 보질 못하자 아예 등을 돌리고 마는 민중교회도 나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현재 민중신학의 여러 흐름들




 

현재 민중신학의 명맥을 잇는다는 곳은 거의 전무하다. 여기서는 그나마 활동을 한다고 보는 몇몇 흐름만 짚어보았다. <한국민중신학회>는 간판만 있지 아무 활동도 없는 유령단체 같은 느낌이다. 인터넷사이트 주소는 www.peacenet.or.kr/~minjung-i인데 가보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얼마 전에 11월 10일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예배실에서 한국민중신학회 정기총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http://minjungtheology.or.kr 로 바뀌었고 학회 활성화를 모색중이라고 한다)


 

3세대 민중신학郡은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을 통해 민중신학의 명맥을 유지하는 그룹이다. 예전에 필자의 '3세대 민중신학 비판'이란 그 글을 99년 말에 김진호 목사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적 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푸코나 데리다, 알튀세, 기든스가 이들의 단골 수청감이었는데, 요즘은 들뢰즈의 철학사상과 매우 친화적인 것으로 보인다. 들뢰즈가 다른 포스트구조주의 사상가들과 달리 그 자신의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어서 교분이 두터운 건지는 몰라도 만약 이들이 들뢰즈의 철학에 근거하여 그 자신의 민중신학을 펼치는 것이라면 이들은 여전히 그 선택을 잘못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들뢰즈의 형이상학은 사물의 표면효과들의 장(場)에 관한 담론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이 아닌 <형이상학적 표면>에 대한 체계라고 불린다.[1] 그것은 사물의 실재 이해관계를 고찰하지 않으며, 단지 <접면>[2]에서의 의미발생의 정치역학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들뢰즈가 기독교 신학에 기여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있다면 아마도 기존 기독교를 가로지르는 탈주의 공간을 주창함에 있어 이론적 근거를 확보함에 있다고 봐진다. 그러나 난 여기에 회의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들뢰즈의 철학은 사회학적 전망으로는 유용함을 가져다주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앞으로의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계관이랑 결코 조화될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제 따로 들뢰즈의 진상을 피력할 날이 오겠지만,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가 말하는 사건 개념은 스토아 학파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을뿐더러,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전제하고 있는 유기체적 세계관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3] 현재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가 이들의 아지트(?)로써 「시대와 민중신학」(다산글방)을 발간하며, http://minjungtheology.net라는 사이트 주소를 통해 알려져 있다. 그나마 민중신학을 잇는 흐름 중에서는 많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이 외에 '민중신학연구소'라고 호서대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임태수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조직이 있다. 이들은 '민중은 메시아인가'에 대해서 민중이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만이 메시아라고 주장하며, '믿음'보다 '행함'을 강조하는 신학사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말하는 민중신학이 너무나 나이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이들이 이해하는 민중에 대한 정의도 기존 민중신학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민중개념과 별 차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에 본래는 민중에 대한 개념부터가 올바로 정립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수만이 메시아가 된다고 할 경우 타종교와 열린 지평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난점이 있다. 임태수 교수는 중심이 있으면서 열려있는 <포용주의>와 종교를 하나로 마구 뒤섞는 <혼합주의>부터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4] 그의 논의대로라면 결국 민중신학도 '기독교 우월주의'와 '타종교 배타주의'적 자세를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쪽으로 귀결되기 쉽상이라고 하겠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민중신학 안에서도 조금 보수적인 신앙의 흐름을 지향하고 있는 걸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치명적 맹점인 철학적 고찰에 대한 중요성은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 '민중신학연구소'는 현재 「민중과 신학」을 계절마다 발간하고 있으며, 인터넷사이트 주소는 http://minjungtheology.org이다.


 

2세대 민중신학자로 알려졌던 박재순은 한 때 민중신학에 몸담았다가 이제는 <생명>과 <영성>에 주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신학자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의 민중신학이 애초에 방향성은 잘 잡았다고 보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상적이었다는 점이 조금 안타까웠다. 예를 들면 현재 그가 말하고 있는 <생명>[5]과 <영성>에 대한 언급들도 그러하다. 물론 그것이 틀린 얘긴 아니래도 두루뭉실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의 인터넷사이트 주소는 http://netschurch.org이다. 영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박재순과 거의 닮아있는 영성신학을 펴는 분이 있는데 그가 바로 김경재 교수다. 두 분의 글을 읽어보면 서로 공감대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물론 그 깊이는 아무래도 연배가 넓으신 김경재 교수의 신학적 폭이 더 넓다고 볼 수도 있겠다. 김경재 교수는 한국민중신학회 회원이면서 그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화이트헤드에 관심하고 있는 신학자로써 한국화이트헤드 학회에도 소속되어 있다. 다소 본인의 주관심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현재 우리 한국에서 김경재 교수만큼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담아내고 있는 신학자도 드물다고 본다. 그에게는 한국 전통문화와 타종교사상에 대한 성찰들까지도 이미 잘 녹아있다. 김경재 교수의 인터넷사이트 주소는 http://soombat.org이다.


 

<<물(物)의 신학>을 제창하여 2세대 민중신학 중에서 첨예한 급진성을 보였던 강원돈 박사는 유물론적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을 조화시키겠다는 그의 작업은 어디 간데 없고 지금은 <사회윤리학> 연구에 골몰해있다. 사실 나의 민중신학이 사회학적 전망에서 우선적 민중을 위한 새로운 사회경제사적 지평의 정책방향을 제시할 경우 강원돈 박사의 사회윤리학적 지평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책방향들과 그렇게 차이가 나진 않으리라 보고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 세계사적 지평에서 현사회가 돌아가는 형편과 이에 대한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사회윤리학에 관한 논의들은 내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꺼 같다. 강원돈 박사의 사회윤리학적 고찰은 앞서의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에서 추구하는 논의들과도 많은 흡사점을 지니지만 강원돈 박사는 그들보다 좀더 뚜렷하게 구체적 정책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 더 진일보했다고 봐진다. 단지 그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나의 민중신학이 탄탄한 형이상학에 기반하여 사회학적 전망으로 나가고 있다면 강원돈의 <사회윤리학>은 형이상학이 부재한 채로 곧바로 사회학적 전망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회윤리학>에는 민중에 대한 개념이해에 있어서도 형이상학적 고찰이 부재한 채로 사회경제사적 해석에 소급된 민중 이해를 전제하고서 그 자신의 논의를 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세계사적 지평에서 관철되는 국제 정치·사회사를 형이상학적 고찰을 통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전체를 꿰뚫는 시각을 갖지 않는다면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매우 지엽적으로 볼 위험성 또한 다분한 것이라 하겠다. 그의 글에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다소 모호하며 이에 대한 종교적 성찰들은 빠져있고 사회에 대한 투쟁은 시작부터 강요되고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그러한 사회윤리와 관련을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 부재한 것이다. 심지어 굳이 <민중신학>이라고 부르기보다 <민중경제사회학>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사회경제윤리 혹은 생태경제윤리에 대한 분석과 연구들은 시민단체들에겐 곧바로 환영을 받을 결과물일진 모르나 종교단체에게 설득을 가지고 먹혀들려면 기독교 세계관과 지평융합할 수 있는 세계관에 대한 고찰이 필연적으로 근저하고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 논문들을 나의 영성수련, 즉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현재 그의 인터넷사이트 주소는 http://socialethics.org이다.


 
 



 

.........................................................



각주



 

[1] 이정우, 「시뮬라크르의 시대-들뢰즈와 사건의 철학」 (서울: 새길, 1999), p.152.



 

[2] <접면>이란 들뢰즈가 그의 저서에서 누차 인용했다는 발레리의 말, "가장 깊은 곳은 <피부>이다"을 상기하면 된다. 이것은 들뢰즈가 현재 결정되어 있는 사물의 상태들의 배치를 통한 의미생산이 정작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가를 극명하면서도 압축적으로 강조한 언급이었던 것이다(이진경, "들뢰즈: 사건의 철학과 역사유물론", 「탈주의 공간을 위하여」 [서울: 푸른숲, 1998], pp.31.참조).



 

[3] Tim Clark, "A Whiteheadian Chaosmos: Process Philosophy from a Deleuzean Perspective" 「Process Studies」1999 28/3-4 (Fall-Winter), p.179.



 

[4] 임태수, "민중신학 강좌(7)-아시아적 성서읽기: 특징·문제·과제", 「민중과 신학」제7호 (충남: 민중신학연구소, 2001 가을), p.16.

[5] 2000년 여름호 「신학사상」誌에 "21세기와 민중신학"을 기고한 문동환도 앞으로의 민중신학은 <생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도대체 민중신학자들이 생명! 생명! 생명!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그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나로썬 솔직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들이 하는 얘기들은 너무나 일반적인 얘기들이라서 설사 그런 얘길 꺼냈다손 치더라도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할 런지가 정작 문제인 것이다. 안병무도 말년에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가졌듯이 그것은 민중신학 진영에서 오래 전부터 나온 얘기를 궁색하게 또 꺼내는 것에 불과하잖은가. 이것은 현재의 민중신학이 그만큼 빈약하고 초라하다는 걸 반증할 뿐이다. 내 얘긴 민중신학이 생명에 대해서 관심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다. 즉,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민중신학이 아무리 생명! 생명! 생명!을 강조한다고 해도 현재의 민중신학이 그 자신의 패러다임적 대전환을 이루지 않는 한 기존 민중신학의 '틀'로는 결코 <생명>이라는 개념을 담아낼 수가 없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은 도대체 민중신학이 새로이 거듭나기 위해서 무엇부터 혹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 지를 전혀 파악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215
 
2002-01-05 18:30:50
 


게시물수 61건 / 코멘트수 5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6 증보판) 출간~!! (2) 관리자 112044 10-25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373 08-08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771 07-10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775 04-29
61 민중신학 대부의 아내, 박영숙 선생 별세 관리자 5533 05-21
60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민중신학은 지금도 유효” 관리자 5517 04-25
59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기독교 해방주의와 민중신학 비판 (1) 미선 7153 01-27
58 홍인식 목사 “해방신학은 행진 중” 관리자 7071 12-08
57 민중신학과 강원돈의 신학 미선이 7300 08-07
56 “민중신학, 상황신학으로 규정할 수 없어” (1) 관리자 9727 01-01
55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미선이 6752 05-11
54 [출간소식] 김명수,『큐복음서의 민중신학』(도올 김용옥 서문 | 통나무) 미선이 7140 07-07
53 故 강희남 목사의 유서…'파장' 예고 미선이 7345 06-07
52 [출간소식] 권진관 『성령과 민중』(동연) (1) 미선이 7380 05-12
51 인도에서 떠오르는 '달리트 신학' 미선이 7100 04-21
50 예수는 민중이란 것에 동의하지만…민중이 예수일까? 미선이 5838 04-08
49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에 담긴 에큐메니컬 정신 미선이 5954 03-02
48 "인민신학+민중신학=통일신학" 노정선 교수, 한국민중신학회서 주장 미선이 8633 05-26
47 권진관 교수의 민중신학과 화이트헤드 철학 이해에 대한 비평 (1) 정강길 8481 04-20
46 새로운 민중신학의 이름, <살림신학> (3) 정강길 7844 01-20
45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사업회 및 학술제를 다녀와서.. (1) 정강길 9546 10-16
44 부르조아의 하나님 : 낙타와 바늘귀, 자본주의, 제국주의 (2) 리옌화 8427 07-14
43 [펌] 깨달음의 사회화 (박재순) 정강길 8576 04-09
42 "손해보고 살자" (광주 연합예배) (6) 정강길 9023 09-11
41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정강길 7348 04-01
40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에 대한 엄밀한 고찰 정강길 7934 03-09
39 학문은 쉬워야 함에도 요구되는 '불가피한 아카데믹함'이란? 관리자 14269 02-22
38 혀짤리고 귀먹고 화상당한 우리의 늙으신 하나님을 아시나요? (최형묵) 정강길 9257 02-01
37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운 사람, 송기득 교수 (정용섭) 정강길 8633 01-30
36 이론과 실천의 함수관계 (* 신학과 삶의 관계) 정강길 7838 12-16
3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후기 (2) 해조 8286 12-11
34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821 12-01
33 한국 기독교 신학의 전개과정과 새로운 전환의 신학 정강길 6479 11-14
32 정강길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을 읽고 나서 (Dong-Sik Park) (2) 관리자 9311 10-27
31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6 증보판) 출간~!! (2) 관리자 112044 10-25
30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정강길 7487 10-25
29 지구화 시대의 민중신학을 위하여~!! 정강길 7550 10-18
28 한국 민중신학자 대회를 다녀와서.. 정강길 6985 09-21
27 일반인과 자각인의 욕구와 영성 (7) 정강길 7260 09-02
26 [펌] 내 신앙의 근본을 뒤흔든 그 말, 민중신학 (정병진) 정강길 7241 09-02
25 책을 읽고.. (김광현) 관리자 6600 09-02
24    이하 광현님과 토론글 모음.. 관리자 7078 09-02
23 민중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과정철학적 관점에서 (장왕식 교수) 관리자 7738 09-02
22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5)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③ 정강길 7727 08-14
21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4)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② 정강길 7123 08-14
20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3)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 <만무>滿無 full naug… 정강길 7796 08-14
19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2) - '영성수련'이란 <공부>工夫, Kung-Fu를 말한다! 정강길 7984 08-14
18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1) -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정강길 12243 08-14
17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373 08-08
16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771 07-10
1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정강길 6918 07-10
14 민중신학과 철학(형이상학)에 대한 문제 정강길 7490 06-17
13 '민중신학연구소' 진영과의 민중론 논쟁글 모음 정강길 7574 05-20
12 ‘다른 관심ㆍ다른 이론적 틀’ 로 논의 "현재 민중신학이 처한 상황과 문제점" (1) 구굿닷컴 7947 05-06
11 [쟁점] 비평 - 맑스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11) 정강길 8799 05-06
10 새로운 민중신학에서 <민중> 개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195 05-06
9 기존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에 대한 의미 정강길 7297 05-01
8 서남동 신학,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9041 04-30
7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775 04-29
6 서남동, 화이트헤드를 만나다.. (5) 정강길 8214 04-28
5 민중사건 그리고 계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7417 04-28
4 화이트헤드에 기반한 사회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하여.. 정강길 7809 04-28
3 민중신학이여.. 제발! 제발! 제발! 미선이 7977 04-28
2 [탈/향 강좌]민중신학 vs. 민중신학, 성서를 읽는 천 개의 눈 (1) 정나진 15080 04-27
1 21세기에도 민중신학은 여전히 표류할 것인가..!! 미선이 16877 04-21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