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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학문은 쉬워야 함에도 요구되는 '불가피한 아카데믹함'이란?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7-02-22 08:16 조회(1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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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신학과 학술적 난해함의 문제
 
 
 
 
"<오늘 세대>는 <이전 세대>를 배워서 오늘에 써먹은 뒤에 다시 남은 교훈들을 걷어들여 <다음 세대>에 건네준다.
 그런 점에서 지성의 역사는 언제나 끊임없는 단순화를 향한 정리의 연속이다."
 
 
 
일반적으로 민중신학에 깃든 이상한 한 가지 편견을 먼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소위 민중신학은 민중의 신학이기 때문에 민중의 언어 혹은 민중의 이야기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파생된 이상한 편견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얘기들은 자칫 <반주지주의>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중신학 세미나들을 참석하다보면 곧잘 듣곤 하는 불만 어린 비평들인데, 이른바 학술적 용어는 곧 식자들의 용어이며 부르주아들의 언어로서 결코 민중적 언어가 아니기에 민중신학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주장들이다. 이런 언급들을 나 자신은 민중신학 토론회 때 종종 봐왔었다.
 
예를 들면, 특히 3세대 민중신학자 김진호의 글은 그런 점에서 많은 비난의 표적이 되곤 했었는데, 어떤 측면에서 사실 이것은 온당치 못한 지적이었다. 물론 문장을 일부러 비비꼬거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일부러 어렵게 했다고 한다면 분명한 비난의 대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일전의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라는 저서는 포스트구조주의 몇몇 사상가들이 주로 그러한 언술전략의 경향을 보여왔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인텔리들의 언어가 일상의 민중적 언어가 아닐 경우 이는 당연히 지적 고고함과 지적 교만에 쉽사리 빠질 위험이 있다. 개념들의 착종은 가능한 쉬워야 하고 대중적인 언어일수록 좋다. 이런 주장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지성사를 보면 새로운 학술적 개념에 있어 난해함이 허락되는 지점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전에는 찾을 수 없었던 <설명과 이해에 대한 효율성의 축척>을 가질 때이다. 예컨대, 우리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개념을 알고서 삼각형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과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모른 채 삼각형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개념을 딱 하나 알아들음으로써 세계에 대한 이해 정도가 더욱 넓어지고 간편해지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못 배우고 무식한 민중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반주지주의자>들이 아닌 이상은 부지런히 세계에 대한 정보와 이해들을 익혀야 함이 바람직하다. 사실 경제적 소외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바로 <정보의 소외>다. 정보의 소외자인 민중일수록 <정보의 체득자>가 되어야 하며, 민중일수록 <정보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 민중교육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학술적 용어가 민중적 언어가 아니라고 치부되면서 이를 경시할 경우 발생되는 문제는 또 있다. 어디까지가 민중의 언어로 규정할 것인지도 애매한 것이다. 예컨대, 화이트헤드 사상은 모른다손 치더라도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용어나 혹은 ‘민중’이라는 용어조차도 식자들의 이상한 암호로 여기는 그러한 민중들도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이다. 당장 우리네 부모님만 하더라도 정작 자신들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혹은 당신 자신이 민중이면서 ‘민중’이라는 용어가 실로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조차도 모르고 계신다.
 
학문의 난해함은 그것이 오류가 있거나 부정합성을 낳지 않는 한, 또는 세계를 효율적으로 이해하도록 이끄는 한에 있어서는, 학문의 난해함 자체를 탓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만약 그럴 경우 기독교 신학 뿐 아니라 모든 학문은 그저 구구단 수준의 언어로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단순함은 좋은 것이지만 자칫 배움의 필요성조차 거세될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지적 게으름을 은근히 자기 합리화로 슬쩍 넘어가려는 구실일 가능성이 많다고 하겠다. 언젠가 김창락 교수는 말하길, 민중신학이 민중의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편으로는 민중신학의 튼튼한 학문성 구축을 오히려 가로막는 요인이 됐었다고도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예수의 언어는 쉽다. 하지만 <단순함>에도 두 가지 차원이 있다. <말 그대로의 단순함>과 <복잡함을 거쳐서 나온 단순함>이 바로 그것이다. 민중예수의 언어는 적어도 후자이며, 바로 그렇게 때문에 거기에는 <깊은 우러나옴>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예수는 우리의 교본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학술적 난해함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면 이것은 핀트가 어긋난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그러한 행태는 누구에게나 이상적으로 지녀야하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점에서는 나 자신도 노력하지만 많이 부족한 사람에 속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합리주의의 모험> 자체를 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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