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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쟁점] 비평 - 맑스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5-06 19:43 조회(8677)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14 
  FILE #1 : 비평-맑스주의유물론기독교-정강길.hwp (119.5K), Down:20, 2006-05-06 19:43:34
  FILE #2 : 맑스-최형묵.hwp (52.4K), Down:8, 2006-05-06 19:43:34


 
   
2003-05-27 23:05:25

 
 
'최형묵-민중신학과 맑스주의'라는 글은
오늘날 진보를 자처하는 기독교 진영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평으로서의 글은 업로드된 글인데
밑의 글은 여기에서 약간 발췌한 것이다..
 
물론 이 글의 비평대상인 최형묵님에게는 나의 이 글을 보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반론은 누구나 가능하다.. 누구든 좋다..
모든 이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열려 있기에..
 
 
 (*펌자주 : 늘 그래왔듯이 당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누구도 내 글에 대한 반론이 없었다)
 
 
 
.........................................................................
 
 
 
 
진보를 자처한다는 기독교 좌파진영에게
 
 
 
 
 
a. 맑스와 유물론의 범주
 
 
기본적으로 맑스의 철학은 근대 세계관의 아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철학이 헤겔적 도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치환해서 그대로 그 패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맑스의 철학은 결코 유물론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현대의 맑스주의가 아무리 다양하고 많다고 해도, 물질의 변증법이 아닌 노동의 변증법이니 실천적 유물론이니 아무리 난리 부르스를 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대한 범주를 넘어서진 않고 있다. 혹은 거기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여 다른 쪽을 강조할 뿐이다. 예컨대, 그 해결 없이 단지 노동과 실천 혹은 계급의 문제와 사회변혁의 당위성을 논할 뿐이며, 해석학적 존재론에 대한 명확한 해결은 모호하게 남겨놓는 것이 고작일 따름이다.
 
그 어떤 맑스주의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해결하고서 넘어간 맑스주의는 없다. 다시 말해, 최형묵이 편견이라고 불렀던 기독교와 유물론의 화해 불가능성과 범주적 한계에 대해서 이를 가장 원초적이고도 고전적 의문이라고 말했지만, 실상 그 기초적인 그 의문조차 저들은 단 한 번이라도 해결하고서 넘어섰던 적이 있었던가? 없다!
 
왜 그리도 나 자신은 단호하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바로 유물론에 대한 해명을 짚고서 넘어갈 경우, 그것은 저들이 안고 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끔찍한 <자기부정>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아마 그럴 경우 저들에게는 엄청난 끔찍함으로 다가올 것이리라. 저들에게는 그 원초적인 의문이라는 것이 치명적인 'X파일'일 뿐이다. 그래서 차라리 편견으로 치부하는 것이 마냥 속편했으리라.
 
사실상 근대 과학은 맑스주의의 토대가 되었던 유물론적 세계관과 매우 잘 부합된다. 물질의 단순 정위와 시간과 공간의 균등성은 가히 유물론적 이론의 기초적 전제들이었다. 다시 말해 저들에게 물질은 자기동일성을 갖는 실체로 전제되어 있다. 모든 이념과 사건들은 물질의 선차성을 앞지르지 않으며 바로 거기서 비롯한다.
 

b. 존재론에 대한 회피와 무지
 
나로서는 아무래도 진보를 자처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 진영과는 대화가 잘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저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나이브하게만 들릴 뿐이다. 반면에 저들은 도무지 나의 문제제기에는 여전히 명확한 답변을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을뿐더러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저들은 모르고 있다.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들의 치명적 맹점은 <존재론>에 대한 오해 또는 무지다. 심한 얘기라고 생각되지만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저들은 자신이 얘기하는 그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그 사태 기반에 우주에 대한 모든 사건들이라는 우주론과 관계되고 그 우주론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의 무지다. 실로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있다. 또한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저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상에서 내가 어떤 사건에 대해 말할 때 그러한 사건은 그 해당사건에만 소급되어서 이해될 수 없으며 그와 관계되고 있는 세계 전체의 지평과도 연관해서 고찰되어야 가장 올바로 가늠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내뱉는 모든 얘기들은 기본적으로 그 어떤 우주에 대한 이해 혹은 전체 세계에 대한 이해에 부지불식간에 기초해서 그 국소적인 부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저들은 기본적으로 바로 이러한 사태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참으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화장실에서는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하찮은 언급에조차도 그것은 그 언어가 지시하는 그 어떤 세계 이해를 깔고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언급을 데카르트의 세계관으로 분석해 볼 경우, 그것은 그 철학적 도식에는 위배되는 말이다. 즉, 데카르트에게는 사유하는 주체를 제외한 모든 대상은 객체로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데카르트식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곧잘 받아들여지기가 힘들다.
 
또한 데리다가 “기표는 기의를 갖지 않는다”라고 언급도 알다시피 데카르트의 세계관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 언어와 대상과의 관련은 다음과 같다.

 
언어는 대상을 지시하지만, 완벽하게 지시하지는 못한다고 봐야 한다. 완벽하게 지시한다고 보았던 것이 근대의 합리주의였고, 아예 여기서 지시체가 없다고 볼 경우는 탈근대 혹은 해체주의쪽이 된다. 해체주의는 철저한 근대에 대한 반발이다. 만약 언어와 대상의 화해불가능일 경우 모든 과학적 탐구는 무의미한 지적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힘들게 세계와 사물을 연구하고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언어가 그것을 아예 지시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언어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언어가 대상과 곧바로 화해한다고 보는 것 또한 독단에 빠지게 된다..
 
결국 언어는 대상을 우연적이고도 부분적으로나마 지시할 뿐이다. 결코 완벽하게 지시될 수는 없다. 적어도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 언어가 놓여지는 <삶의 자리>라고 부른 그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살펴볼 꿈조차 꾸지 않았었다. 그 <삶의 자리>를 그려보게 되는 자리가 바로 우주론이요 그 기초가 형이상학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세계 안의 모든 사건과 사물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한 한에 있어서는 불충분한 것이 되고, 그 이론은 수정 또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c. 정리
 
저들에게는 내가 존재론에 천착하고 유물론에 그 범주적 한계를 긋는 것이 마냥 성급한 단정으로만 보이고, 저급한 수준이라고 여길 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맑스주의와의 대화에 무언가 새로운 게 있었던가. 저들은 이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이를 정면으로 고찰해본 적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렇지 않고서 나의 얘기를 그렇게만 본다면 그것은 그 자신들부터가 성급한 단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은 저들이 너무나도 가볍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아예 그런 것이 중요한 줄조차도 모르고 있기에. 내게는 저들이 진보가 아니라 또 하나의 보수로 자리매김 되어있다. 왜냐하면 명확하게 해결하지 못하고서 마냥 회피할 뿐이니까. 혹은 회피자체가 대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저들에게는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존재자와 존재방식이 따로 분리되었던가. 신 존재 증명이 급선무라는 얘기도 아니다. 그냥 자신이 말하고 있는 바들 그리고 우리 주위의 일상들만 잘 관찰해도 금방 탄로나는 치명적 허점들이다. 내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말할 때 전체 우주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기반해 있지 않을 경우 참으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조차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게 된다.
 
플라톤과 들뢰즈가 같이 엮일 수 없으며, 유심론과 유물론이 같이 엮일 수 없다. 오늘날 제 아무리 맑스주의가 다분화 되어 있고, 천차만별이라고 해도 그 역시 범주적 한계 안에서의 다양성일 뿐이다. 아무리 노동과 실천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 밑에 깔린 유물론이라는 그림자가 명확하게 단 한 번도 제대로 지워진 적이 없다. 유물론이라는 그림자를 명확히 해결하고서 넘어간 맑스주의가 있었다면 제발 소개해 달라. 나로써도 그러한 이론이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하리라.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이 점 또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대화가 불필요하다거나 맑스주의에 대한 공부가 아예 필요 없다고 보는 입장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실용적 의미로서 요원할 뿐이라는 얘기다. 특히 계급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 사회에 대한 분석에 있어 맑스주의 또한 하나 이상의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해석학적 존재론에 대한 고찰은 맑스주의 진영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하게 가리켜주고 있다.
 
저들은 종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가장 기본적 이해를 회피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는 저들에게는 이미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가장 기초적 이해부터가 결여된 채로 해방과 실천을 부르짖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진정한 해방도 아니고 실천도 아니다.
 
하지만 종교는 언제나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서부터 그 기초에 둘 것을 지난 인류의 역사가 얘기하고 있잖은가. 존재론을 공백으로 남겨두거나 이를 회피하면서 존재에 대한 해방을 얘기한다는 것은 내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참을 수 없으리만큼 가벼운 것이다.
 
궁극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해방되어야 할 것은 물질적 평등을 향한 해방실천보다도 참인식 즉 종교적 깨달음에 있을 뿐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게 글러먹었다는 얘기다. 진정한 종교적 깨달음은 그 자체로 모든 평등과 해방을 지향한다. 즉, 예수는 맑스를 <지양>한다고 보는 것이다.
 
 
2003-05-27 23:05:25 / 175
 
hs (06-10-22 22:06)
 
솔직한 심정으로 좀 골 때린다는 표현을 쓰고 싶네요.

제가 레비나스주의자라고 해서 정강길님에게 "제 1철학은 존재론적 형이상학이 아니라 윤리적 형이상학인데 무슨 개소리?"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면 어떨까요?
본인은 화이트헤드의 개념과 논의를 아무런 논증없이 원용하면서, 그 이론을 바탕으로 남들이 '기초적 이해부터가 결여'되어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그리 학문적인 태도같진 않습니다.

제가 제3시대 연구소 분들이라도 대꾸하고 싶지 않겠습니다만...

미선이 (06-10-22 22:34)
 
솔직한 심정으로 골때리는 댓글이군요..
제1철학이 존재론적 형이상학 아닌가요?
이미 철학자들도 그렇게 얘기하구 심지어 사회과학자들까지도 얘길하는데..
그 정도 얘긴 굳이 화이트헤드까지 언급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어쨌든 비꼬는 님주장의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근거도 얘기해야 할 듯~

제3시대는 직접 만나서 여쭤본 적도 있지만, 이부분 만큼은 그냥 난감한 표정만 짓더군요..
아마도 둘 중 하나겠죠.. 그냥 무시하고 싶거나 정말로 답변하지 못하거나..
어쨌든 제 얘기에서 틀린 게 있다면 언제든지 구체적으로 지적해보라구 했을 뿐인데두요..
물론 이 점은 지금도 유효하지요.. 뭐 님을 포함해서 얼마든지 언제든지 얘기해보길 바래여~

hs (06-10-22 23:28)
 
정강길님에게 레비나스는 '철학자'가 아닌가보죠? 저 말 레비나스가 한 말이에요.
제가 저 말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xxx주의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 모두가 xxx의 이론체계와 기본개념을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말이에요.

정강길님의 최대 문제점은, 화이트헤드의 지나친 원용과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극단적인 과신이에요.

"진정한 종교적 깨달음은 그 자체로 모든 평등과 해방을 지향한다."와 같은 명제만 봐도 그래요.
님의 저 명제를 누가 보증해주죠? "이미 철학자들도 그렇게 얘기하구 심지어 사회과학자들까지도 얘길하는데.."
라고 말하면서 정강길님은 논증의 의무에서 면제될건가요.

제3시대 분들이 난감한 표정만 짓는 이유는, 제가 "제 1철학은 존재론적 형이상학이 아니라 윤리적 형이상학인데 무슨 개소리?"라고 님께 이야기 했을 때
님이 지으실 표정을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서로 서 있는 사상적 기반이 전혀 다른데, 자신의 기반을 상대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학문적이거나
신앙적이진 않겠죠. 레비나스주의자와 백두주의자가, 제1철학이 윤리학이냐 존재론이냐 갖고 논쟁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골때린다는 표현은 좀 심했군요. 사과드립니다.

hs (06-10-22 23:37)
 
첨언하자면, 제가 스피노자-니체-들뢰즈주의자라면, 굳이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이 없어도 내재적으로 세계를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고,
제가 라캉주의자라면 굳이 화이트헤드의 존재론이 없이도 상상계-상징계-실재로 주체를 설명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백두가 위대한 철학자이고,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해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은 절대 부정하시겠지만) 정강길님의 유사- 백두 근본주의적인 태도는
서로의 접접을 찾고 생산적인 논쟁이 되기 보다는, '백두가 짱이야' vs '니맘대로 하세요'의 구도가 되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미선이 (06-10-23 00:25)
 
아하, 사상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그걸 강요하면 폭력이다?
그 얘긴 오히려 님이 비판하는 사람들이 님한테 도로 돌려줘도 되는 얘기겠네여..^^

예컨대, 보수 기독교인들이 결국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뭐라구 그러겠어여..
우리들도 나름대로 세계 해석의 툴이 있다.. 그러니 너랑 나랑은 사상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지 마라구.. 부시같은 자들이 그러면 뭐라겠어여..
글구 존재론적 형이상학이란 점은 대부분의 철학개론서에도 그렇게 나오지 않나요?
사회과학자의 경우는 얼마전 한국에도 왔던 임마누엘 윌러스틴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구여..
내가 보기엔 이런 얘긴 이미 일반화된 얘기이기에, 굳이 화이트헤드까지도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 거구요..

어쨌든 그 같은 님의 얘긴 다양성만 인정하구 다양성 간의 충돌은 고찰하지 않는 맥락이 있답니다..
이런 짓들은 주로 다양성 다원성을 주장하고 근대성을 비판하는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 하는 짓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 제가 여기 게시판에 쓴 '다양성과 다양성 간의 충돌에 대한 고찰'이란 글도 좀 참조 바람)
즉, 님은 그저 파편화된 상대적 다양성에 대한 맥락에서만 볼 뿐, 그 다양성 간의 충돌은 고려치 않는 얘기라는 거죠..
 
님이 지적하는 '백두근본주의'에 대해선 제가 이미 오래 전에 다른 글에서도
분명하게 답변한 바 있지만,(혹시 이런 글들은 안읽어보고서 저한테 딴지거신 거 맞죠?)
서로 간의 충돌에 있어선 백두보다 훨씬 더 정합성과 설득력 있으면
가차없이 백두를 버린대두여? 이게 근본주의자들 짓인가요? 전 지금도 그 지점을 찾고 있을 뿐인대두?

예컨대 맑스든 들뢰즈든 화이트헤드와 충돌나는 지점이 있기에 불가피하게 비판코자 언급했던 것이구
바로 그 지점에서 양자의 입장을 보니까 좀더 화이트헤드가 설명력이 높다고 본 것이구요..
이미 이에 대한 글들은 여기 학술게시판에도 올려져 있구..
저로선 어차피 세계를 설명하는 설명력에 있어서 보다 설명력이 높은 것을 취할 뿐이랍니다..

끝으로 혹시 제3시대 회원인가요? 아니면 그쪽과 친화적이거나..
왜냐하면 제 앞에선 그런 언급은 찍소리도 않고 언젠가 뒷구녕으로
저에 대한 그런 오해가 오고간다는 것쯤은 이미 저도 익히 들은 바 있어 알고 있기에..
 
그러나 그런 얘긴 제겐 정말 웃기는 얘기지요.. 분명하게 말하지만, 틀린 게 있으면 언제든지 지적해보거나
혹은 서로 간의 그 충돌에 있어서 보다 설득력이 덜 떨어지는 지점을 언제든지 저한테 제시해보래두요..
저로선 제 책에서도 언급하기도 했지만, 레비나스나 데리다 들뢰즈 같은 자들도
제가 첨예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지점은 서로 간의 충돌에서이지, 양립가능한 다양성이 아니지요..
양립가능한 다양성이라면 맑스든 레비나스든 들뢰즈든 뭐든 간에 이미 저역시도 추구하는 바랍니다.. ok?

hs (06-10-23 01:52)
 
정강길님은 보수적 기독교의 '존재론적 형이상학'을 비판하시는 모양인데, 저는 누가 예수가 김일성이라고 믿든 이원론적 교리로 질알쌈치기를 하든 전혀 상관없어요. 다만 그런 종교를 믿는 사람이 어떤 '행태'를 보이느냐를 갖고 문제를 제기할 뿐. 부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 인간이 복음주의를 믿든 제세례파를 믿든 나랑 상관없어요. 그 인간이 벌이는 짓거리들이 문제가 되는거지. 그러니 '우리들도 나름대로 세계 해석의 툴이 있다.. 블라블라' 하는 말은 '어 그래' 하면 될 일이지, 니네 해석틀은 구려. 라고 정색할 필요 없는거죠. 오히려 그런 해석틀 갖고 있다는 인간들이 보이는 윤리-실천적 지평을 비판하는 것이 맞다고 보여지는데요. 그리고 님이 언급하신 그 대부분의 철학 개론서에서 백두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백두를 숭앙하기 위해선, 철학개론서 저자들 븅신만드는 언술을 구사하면서, 그 반대의 경우에는 꼭 그런식으로 근거를 대시네요. '이미 일반화된 이야기'들에선 백두가 더 높게 평가받을까요? 스피노자-칸트-헤겔가 더 높게 평가받을까요? 그리고 어떤 일반화된 명제에 대한 안티테제를 누군가가 제시했을 때는(지금 이 경우엔 레비나스의 인용한 말.), '일반적으로 이게 폭넓게 받아들여지잖아'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논증이겠지요.

불행히도 전, 다양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다양성 인정 따위엔 관심도 없어요. 강길님에게 인정투쟁따위를 벌이려는것도 아니구요. 다만 님의 '펌자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거죠. 왜 제3시대 사람들은 강길님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릴까..에 대한 대답말이에요. 강길님께서는 저들이 화이트헤드에 대해 무지하고, 맑스와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되어 있기에 고의적으로 적확한 답변을 피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볼 때는 강길님의 유사-근본주의적인 언술에 문제가 있다는거구요. 이 부분은 인정하기 싫으시다면 뭐 어쩔 수 없겠죠. 어쨌든 제가 만일 라캉의 개념을 가지고 민중신학을 더 잘 설명해 낼 수 있다고 해서, 다른 민중신학자들에게 라캉으로 설명하니까 이렇게 좋은데 왜 안해? 이거 봐봐 짱이잖아. 이런식으로 말을 건넨다면 상대방에게서 건설적인 대답이 되돌아오긴 힘들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들뢰지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화이트헤디안들에 대해서는 더 큰 적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위대하다는 백두의 사상을 가지고 내놓은 결과물들을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오죠. 두 진영이 벌이는 개념-놀이질은 말할 필요도 없구요. 강길님은 '이론'을 하시려니까 백두가 와닿으시는지는 몰라도, '비평'을 주로 하시는 제3시대 분들에게 유기체철학은 별 감흥이 없을겝니다. 강길님의 비판이 '지금의 민중신학이 이론 없는 비평이어서 이 모양이다'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비평하는데는 백두보다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는 이론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론화 하는데 있어서도, 저는 기독교든, 민중신학이든 오히려 정신분석쪽과의 친화력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해하시는 것 같아 첨언하면, 저는 다원주의자보다는 근본주의자에 가까운편입니다. 그리고 제3시대 회원도 아니고, 그쪽에 별로 친화적인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오래전부터 강길님의 글을 읽어온 사람 정도로 해두죠.

미선이 (06-10-23 02:13)
 
오래전부터 제글을 읽었다구여?? 그렇게 거짓말을 해선 안되져..
님에게는 행태와 해석학이 따로 노나여? 윤리든 실천이든 그것 역시 일종의 해석이구..
결국은 그 존재가 어떤 맥락에 있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는 거 아닌가여?
이런 얘긴 후기 비트겐슈타인조차도 얘기한 것을..

어쨌든 모든 행태란 그 사람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그 해석의 신념체계와 관계되는 법..
그러니 제발 그런 나이브한 얘기 좀 하지 말자구여..

그리고 비평은 제3시대만 하나여? 글구 님이 보기엔 화이트헤드를 수용하는
여기 세기연 같은 곳도 그저 개념놀이질만 하는 곳으로만 보이나여?
정신분석이 백두보다 더 유용하다는 주장은 좀더 논증이 필요한 얘기란 건 알죠?
화이트헤드와 정신분석 혹은 심리학과의 관련연구들은 알고서나 얘기하나여?

아마도 님은 별로 제글을 꼼꼼하게 읽어보지도 않고서 그저 이런 쪽에선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정도
아니면 그저 들은 풍문정도일 듯.. 다양성과 다양성의 충돌의 고찰이란 글도 읽었다면
애초 그런 얘기들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져..

솔직히 님의 논리대로 따져봐도 화이트헤디안들에게 적의까지 가질 필요가 뭐 있남?
님말대로 '행태'에 대한 게 아니라면 질알쌈치기를 하든 상관없어야지..
즉, 님얘기대로 그냥 '어 그래'하면 될 일이지.. 안그러슈? (아무래도 뭔가가 배알이 꼴리남?^^)

물론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근거만 있다면야 반론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요~

hs (06-10-23 11:16)
 
강길님이 예전 홈피나 우리모두, 진보누리, 제3시대 등에 지르고 다닌 글들 대부분 읽었다고 하면 또 거짓말이라 하실건가요?

후기 비트를 그런식으로도 해석하는군요. 그럼 이건 어떤가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와 "의미는 사용에 있다."라는 전,후기 비트의 명제를 종합해보면 무슨 결론이 나오죠? '화이트헤드는 뻘짓거리했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님은 철학사의 거장을 너무 님 좋을대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제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딴청피우시는겁니까? 제가 님의 "모든 행태란 그 사람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그 해석의 신념체계와 관계되는 법"이라는 명제를 반박하기 위해, 보드리야르는, 슬로터다이크는,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면서 그 사람들 이론을 아무리 읊어봤자, 그게 우리의 대화에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하다 못해 님이 언급하신 후기 비트의 '의미는 사용에 있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신다면 비트를 끌어들이면서 그런 말씀은 못하실텐데요..

'정신분석이 백두보다 더 유용하다는 주장'은 논증이 필요하고, '백두가 정신분석보다 더 유용하다는 주장'은 선험적 진리인가요? "내가 좀 해보니 그렇더라"는 말씀이시라면, 그대로 님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영미권을 제외한 정신분석, 구체적으로 라캉주의 정신분석과 화이트헤드와의 관련연구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론 영미권의 자아심리학, 대상관계이론은 제가 말하는 '정신분석'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편이라서요.

'다양성과 다양성의 충돌의 고찰'은 사실 별로 의미있는 글은 아니었어요. 강길님은 자신의 그 글이 뭔가 대단한 시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차이와 다양성에 기반한 포스트주의에 대한 비판은 한번 지젝이나 바디우를 참고해 보세요. 화이트헤디안들에 대한 적의는, 그들의 유사-근본주의적 행태 때문입니다. 자기들끼리 화이트헤드짱 하는건 좋은데 온동네 돌아다니면서 백두가 정말 짱이거든?하면서 시비를 걸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더 그렇겠지요.

이정우 씨가 정강길님에게 "그리고 어떤 철학자를 단적으로 숭배한다든가 단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학문적 태도가 아니라 종교적 태도입니다. 누군가를 '평가'하려고 하기 전에 우선 그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각 철학자들의 텍스트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그 구체적 내용을 이해하면 됩니다." 라고 했더군요. 이게 님에 대한 저의, 그리고 아마도 제3시대의 평가와 비슷할거라 생각합니다. 님은 이게 전부 '화이트헤드를 잘 모르는'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만,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대체적으로 일치할 땐,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점검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해온 말을 간단히 요약하고, 더 이상의 댓글은 접도록 하죠. 누가 더 마지막으로 댓글다나 놀이를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요.

다양성의 충돌에서 뭔가 얻고 싶으시다면, 구체적으로 제3시대나 비화이트헤디안 진영과 논쟁을 하고 싶으시다면, 벽에대 대고 말하듯이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읊어대거나 철학사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전유하거나 하지 마십사 하는 이야기입니다. 논쟁이 가능하려면 충돌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서로의 접점을 만들어야겠죠. 서로를 자신의 맥락으로 환원해서 해석하면 짜증만 날 뿐이죠. 사람들이 "구체적이고도 정합적인 근거"를 대가며 님과 논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강길님이 사람들의 언술을 모조리 백두적 맥락으로 환원해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피차 차라리 안하니만 못한 짓이거든요.

강길님이나 세기연의 활동은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강길님이 제3시대나 기타 인문학자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 단지 그들이 백두를 잘 몰라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워서 글을 섞어보았습니다.  평안하시길.

미선이 (06-10-23 11:39)
 
거기 올린 글을 읽었다는 분이 그러신지.. 후기 비트가 말한 언어가 놓여지는 '삶의 마당'을 얘기한 건데..
화이트헤드가 보는 존재론의 자리가 그런 거여.. 무슨 딴소리 하시는지.. 우리모두면 예전홈피에 잠시 글남긴 분 아닌가모르겠네여..

제가 언제 백두가 정신분석보다 더 유용하다는 주장을 선험적 진리라고 했던가요? 글구 제가 언제 온동네 돌아다니며 근거없이 얘기한 거였나여? 다양성 간에도 충돌이 있으니 하는 얘기였지.. 님이야말로 온동네 돌아댕기며 시비거는 사람 아닌지..

제가 분명히 말했져? 백두근본주의라는 게 서로 간의 충돌에서 나온 고찰이었을 뿐이라구..
서로 간의 충돌에 있어선 백두보다 훨씬 더 정합성과 설득력 있으면
가차없이 백두를 버린대두여? 이게 근본주의자들 짓인가요? 전 지금도 그 지점을 찾고 있을 뿐인대두?
예컨대, 사건 이해에 있어서 들뢰즈와 화이트헤드가 분명히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대해 비평을 가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것.. 만일 여기서 들뢰즈가 훨씬 더 설득력 있다면 들뢰즈를 선택하겠져.. 이게 님이 말하는 백두근본주의 태도인가여?

님 스스로 다음과 같이 얘기했죠?
"논쟁이 가능하려면 충돌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서로의 접점을 만들어야겠죠."
저의 들뢰즈-화이트헤드 비교고찰에서 볼 때도 제 글이 이러한 글이 아니란 얘긴가여?
저는 그 두 사람 이해의 충돌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제가 들뢰즈 이해를 조금이라도 틀린 게 한 거라도 있다면 지적이나 해보던가..
그리고 백두도 제대로 아는 분이라면 그 글에 대해서 대답이나 해보시던가..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논박은 않고
그저 "백두숭배나 하지 마세요" 라고 앵무새 답변만 하시니.. 님얘기가 가소로운 아규라는 거에여~!
님표현대로 질알쌈치기를 하든 그냥 행태비판이나 하시지여..
아니면 님이 배알이 꼴려서 나도 질알쌈치기 한 번 해보자는 건지 몰라도..
평안하시길~

hs (06-10-23 13:09)
 
본의 아니게 댓글을 하나 더 달게 되었네요. 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이 안된 것 같아서. 강길님에게가 아니라, 이 댓글들을 읽을 다른 분들에게. 어쨌든 뱉어낸 말을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홈피에 글 남긴 적 없구요, 제발 다른 사람의 사상 갖다가 백두에다 끼워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구요, (근데 '삶의 마당'은 'a form of life'의 새로운 역어인가요?) 저는 온동네를 돌아다니긴 하지만, 누구처럼 가는 곳마다 시비를 걸진 않지요.

'가차없이 백두를 버린다'구요? 이미 모든 사상을 백두의 틀에 끼워맞춰서 이해를 하는데 어떻게 백두를 버려요. 백두의 틀을 가지고 그것에 안 맞는건 쳐내고 부족한건 채우는데 어떻게 백두보다 더 정합성이 있는 이론을 찾아요? 그건 님이 백두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우기고 싶으니까 구사하는 레토릭일 뿐이죠. 어떤 사람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 하는 것 보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것이 비교적 정확하겠죠?  님이 예 들기 좋아하는 부쉬한테 물어보세요. 너 전쟁광이니? 석유땜에 전쟁하니? 부쉬에 대한 평가는 부쉬 스스로가 구사하는 '세계 평화'같은 언술이 아니라, 그 인간이 보여주는 행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거죠. 강길님은 '자각인'이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얼른 착각에서 빠져나와서 자신을 둘러싼 외부의 평가를 한번 참고해 보라고요.

님의 들뢰즈 이해나 백두 이해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없어요, 왜 사람말을 못알아들어요?  다만 님이 '민중신학'의 이름을 걸고 온동네 돌아다니면서 벌이는 행태 때문에 좀 짜증이 날 뿐이죠. 님은 제가 지금 님과 사상투쟁하는 걸로 생각하고 있나본데, 저는 님의 행태를 비판하는거에요. 난 한기총이 우주만물을 초월하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든 아우구스티누스를 제대로 알든 모르든 눈꼽만큼도 관심없어요. 걔네가 기독교라는 이름을 달고 벌이는 짓거리들이 짜증나니까 이야기하는거죠.

그리고 뭔가 착각하신 모양인데 지금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한건 저구요, '나 백두 근본주의자 아니거든? 이래도 내가 백두 근본주의자니? 이래도? 이래도?'하고 앵무새 답변만 하고 있는게 님이에요.  제발 자신만의 세계에서 좀 나와서 외부의 평가에 귀를 조금 더 기울이세요. 자기는 민중신학의 아방가르드, 나머지는 후진 대중이라는 식의 마인드로 논쟁하자고 덤비는데, 님같으면 상대해주겠어요? 님은 제3시대 사람들이 너랑 우리랑 그냥 '다르다'고 주장하고 충돌을 고찰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근본주의자와는 누구도 충돌하고 싶지 않은법이에요. 예를들어 모든 사건이 성령의 역사로 환원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충돌하여 무슨 논쟁을 할 수 있을까요? '어휴, 그렇게 살다 뒈지렴'하는 반응 말고. 그 반응을 조금 더 고상하게 표현한게 '다르다'는 표현이겠죠.

한 가지 제가 확신하는 것은 정강길님은 수십년이 지나도, 백두보다 나은 사상을 결코 발견할 수 없을겁니다. 그래서 수십년이 지나도 백두근본주의자로 남아있을거구요. 그리고 그 때도 말씀하시겠죠. 백두보다 더 나은 사상 있으면 가져와 보라니까!!! 그때도 계속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백두적 맥락으로 환원해서 해석하고 계실거구요. 정강길님이 백두근본주의자가 맞다/아니다는 수십년 후 이 댓글을 보는 다른 분들이 판단하겠죠.

정말 마지막이었습니다.

미선이 (06-10-23 19:36)
 
hs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여기에 글을 남겼는지 안남겼는지는 님스스로 말해봐야 뭐하나여? 우스운 거져..
물론 님자신이 누군지를 얘기하고 안하고는 님의 자유이듯이, 저역시 님의 분명한 실명과 메일을 알기 전까지는 님의 그런 언급들을 믿고 안믿고는 제 자유겠져.. 즉, 그런 식의 언급은 백번 읊어봐야 소용없단 얘기임..ㅡㅡ;

그리고 님은 제가 쓴 백두 글을 읽어보질 않았습니다. 만일 읽어보셨다면 이미 반박이 된 얘길 꺼낼리가 없잖아요. 그런 식으로 얘기하시니 명백하게도 님은 제 글을 제대로 안읽어봤다고 제가 얘기하는거져.. 제가 사건의 이해에서도 백두에 들뢰즈를 끼워맞추기라도 했단 말인가여? 읽어보면 알겠지만 같은 사건을 두고서 서로의 그 설명력의 차이에서 찾을 뿐이지 들뢰즈가 말하는 사건은 들뢰즈의 언술대로 이해하고 풀어놓고 있잖아여.. 분명히 안읽어보고 얘기한 건 맞져? 하도 우기시니까 실제로 예를 들어서 얘기하는 것뿐이랍니다..

글고 도대체 사상투쟁과 행태가 어떻게 이분되는지도 참 우습네여.. 한기총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랑 한기총이 기독교 이름을 내세우는 거랑 어떻게 분리가 되나여? 님의 그 짜증이란 것도 그 자체로 모순이져.. 그 짜증이란 것도 어차피 서로의 생각과 사유가 다르니까 나온 건데.. 행태비판이지 사상투쟁은 아니라면서요?

무엇보다 이 우주 자체가 관계적 사태인데도 님에게는 모든 게 파편화되는 식으로 제각기 따로따로 노나봐여? 관계적 사태가 아니라면 모든 건 그저 '자기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겠져.. 그럴 경우 님의 언급도 역시 한낱 자기넋두리일 뿐.. 누가 누굴 탓해버리는 거 자체가 자기 모순이 되는 것을..

그리고 님스스로도 말했듯이, 님이 근본주의자고 또 근본주의자는 누구도 충돌하고 싶지 않다면 저랑은 충돌할 이유가 뭐 있나여? 내가 민중신학 운운하거나 백두를 애기하는 건 사상적 비판에도 들어가는 거 아닌가여? 제발이지 님 얘기는 스스로 모순된 얘기들을 한다는 사실을 좀 알기나 바래여.. 귀를 좀 더 기울이라구여..

게다가 이미 백두자체가 조금이라도 오류를 보일 경우 얼마든지 자신의 이론들은 과감하게 수정 또는 폐기처분하길 바라는 사람이란 점과 님얘기처럼 그저 다르다라는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어휴 그렇게 살다 뒈지렴'이란 말은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님같은 사람한테도 도로 돌려줄 수 있는 얘기란 점도 제발 좀!좀!좀! 아시길 바람..

지금까지 님의 문제제기란 것도 그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하나도 제시하질 못하고, 그저 '당신은 백두근본주의자다'라는 이 주장자체가 이미 님 주장의 근거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인데, 이게 무슨 문제제기인가여? 님은 초딩도 아니시면서 말이져..
글구 백두보다 더 나은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구여?^^ 요근래 화이트헤드를 뛰어넘는다는 얘기가 있어 켄 윌버에 관심하고 있는 중인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백두를 뛰어넘나 골몰하는 데 있지, 결코 거기에 안주하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답니다(뭐 님은 안믿을테지만..) 솔직히 님이 절 제대로 알고나 하고서 문제제기 운운하며 얘기하는 건지? 아마도 님이 저를 백두근본주의자로 보는 그 시각 자체야말로 오히려 님의 근본주의적인 고정관념이 아닌가 싶네여..

마지막이든 아니든 혹시 또 얘기할 거 있으면 반론 있으시면 얼마든지 해보세요..
뭐 안해두 상관없구요.. 마음대로~!

어쨌든 괜찮다면 <백두근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신 후 글을 써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의 글을 읽고도 그런 얘길 재차 동일하게 꺼낼 수 있을 거라고 보진 않으니까요.

["화이트헤드만이 최고야"라는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http://freeview.org/bbs/tb.php/e006/3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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