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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존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에 대한 의미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5-01 22:37 조회(7171)
   트랙백 주소 : http://www.freeview.org/bbs/tb.php/d001/12 


 
(* 이미 예전에 다른 곳에 써놨던 글인데 이 곳에 올려봅니다..)
 

 
기존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에 대한 의미
 
 
 

철학과 신학의 관계는 그리스도교 신학사상사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으며, 모든 종교는 미완의 형성 과정 중에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불가피하게 모든 언명에 부득이하게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진 신학자인 존 캅(John B. Cobb)이나 그리핀(David R. Griffin)같은 화이트헤디안들도 『Process Theology-An Introduction Exposition』(Philadelphia: The Westminster, 1976)의 "Philosophy and Theology"에서 말하길, 그리스도교 신학사상의 문제는 결국은 우리가 어떠한 철학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그리스도교 신앙의 그 원초적 뿌리는 분명 <역사적 예수>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2천 년 전 어떤 팔레스틴 촌뜨기가 갈릴리 촌동네를 다니면서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무언가 역사적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현재의 기독교는 우째서 그러한 역사적 예수를 닮는 참신앙을 효율적으로 전수받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교회 지도층이 그 자신의 헤게모니를 위한 체제유지로 전락해 버렸을까요? 분명 기독교의 기반은 가난한 자와 함께 했던 역사적 예수의 삶의 행태입니다.. 이러한 예수를 본받고 그 가르침에 따르고자 한 데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나온 것이라면 오늘날 우리는 다시 이것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주류 기독교가 어찌 이 지경이 되도록 변형·왜곡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안병무의 유명한 논문인 "예수사건 전승모체"에서 예수사건의 전승이 초대교회공동체의 예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민중적 공동체의 경로와 흐름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라는 인물이 일으켰던 이 사건은 바울신학을 비롯한 원시그리스도교 공동체들과 초대 변증가들 그리고 중세 교부들에게 점점 전승되면서 두말할 나위 없이 <헬라화>되어버렸다는 데에 그 치명성이 있었는데, 이것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담론의 전승에 있어 잘못된 형이상학 즉, 헬라철학의 관념론적 이원론이 그리스도교 신학사상에 그 사유의 베이스로 점점 곤고하게 자리해버렸다는 얘기에 다름 아닙니다.. 물론 이 때의 헬라철학이란 플라톤 철학인 이원론을 의미합니다.. 이미 신약성서가 헬라어로 쓰여졌고, 신약성서시대가 이미 헬라문화권에 압도적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시대였음을 상기해볼 때 이러한 흐름은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했던 것이죠..
 
 
이러한 사실은 이미 화이트헤드조차 『관념의 모험』(한길사)에서 피력하고 있습니다(AI 18/64)..이 지점에서 일찌기 그리스도교 신학사상은 점점 체계를 세워가는 교리화 작업을 바로 헬라철학을 알게 모르게 도입함으로써 그 작업이 수행되어 갔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 교리화 작업의 첫 단추를 그리스 문화권에 바탕을 이뤘던 플라톤의 형이상학으로써 잘못 꿰매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이 부분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당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처한 시대적 한계요, 성서 또한 시대의 산물임을 드러내는 예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일련의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을 형성한 변증가들과 교부신학자들은 그 당시 그리스도교 외의 여러 상이하면서도 유사한 사상적 종파들의 거센 공격들을 받으면서 동시에 점점 헬라철학이 그 밑변에 자리하면서 기독교 신학을 체계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었습니다.. 이같은 그리스도교 사상의 체계화 작업은 결정적으로 콘스탄틴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됩니다.. 하지만 초대 변증가들과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체계화에 있어 제일 먼저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 부지불식간에 전제로써 스며들어 있었던 형이상학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고찰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희랍철학의 압도적인 세계 해석에 경도되어 그만 이 직무를 유기했던 것입니다.. 이데아아 현상세계의 분리를 의미하는 희랍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은연 중에 당연한 <전제>assumption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던 셈이지요..
 
 
나는 이런 점에서 화이트헤드가 『관념의 모험』을 썼듯이 우리는 기독교 사상사를 여전히 모험을 진행하고 있는 과정 상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기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시행착오의 그리스도교 사상사』를 써보고 싶다는 얘길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사는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해석 또는 전승하지 못한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시행착오의 역사에 다름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한번도 완성된 적이 없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여정이요, 도상에 있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역사적 자취들인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시행착오 안에 놓여 있지요...
 
 
또한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중세 스콜라 시대로 가면 그리스도교 신학은 더욱 정교화, 체계화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그 베이스로 해서 기독교 신학을 정교화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집대성이라 불린 것처럼 아퀴나스의 신학 또한 스콜라 철학의 집대성으로 불렸습니다.. 물론 서양철학사의 기초를 다진 분들은 잘 알겠지만 그또한 이원론의 범주에 놓여 있는 것이죠.. 희랍철학은 <이원론>이라는 뚜렷한 색조를 띤 형이상학이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일련의 서양철학사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PR 39/110)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 있는데, 그만큼 이원론의 뿌리깊은 흡입력은 근세 이르러서도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독일 관념론에까지 죽죽 이어집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적어도 이것이 물질보다 정신을,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이를 1차적인 것으로 보며, 변화와 유동하는 이 땅이 아닌 영원한 내세와 불변하는 초월자에 대한 관념들을 예증하는 사례들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사실 플라톤의 철학은 기독교를 전수하는 데 있어서는 영원과 궁극을 말하고 있기에 효과적이었지만, 그로 인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원형의 사실들은 보다 비역사적일 정도로 희석된 채로 오늘날까지 전수되고 있었던 것이었죠.. 게다가 그러한 이원론의 힘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기독교 교리에 대한 개정 작업이 다시금 이루어진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도록 완고(頑固)하게 만들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주류 기독교는 그 이원론을 감히 떼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더욱 화나는 것은 잘못된 그 교리가 오히려 세상을 규정하는 잣대가 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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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기존 민중신학이 그토록 안티를 걸며 비난했던 <서구신학>의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기존 민중신학이 그토록 비난했던 <서구신학>이란 바로 관념적인 이원론이 깔려 있던 주류 그리스도교 신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때 민중신학 1세대가 그토록 저주했던 <서구신학>이 도무지 뭐냐고 하면서 구구절절 말들이 많았었습니다.. 어떤 이는 민중신학이 저주했던 서구신학이란 게 도대체 있기라도 했던가 라고 하면서, 민중신학은 그런 점에서 학문적 고찰이 미흡하기 때문에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공격하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타당하기도 한 얘기지만, 분명히 민중신학이 저주했던 서구신학이란 것은 있었습니다.. 단지 민중신학자들 그 자신들도 당시의 시대적 절박성으로 인해 체계적인 학문성을 담보하지 못함으로써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뚜렷하게는 몰랐었을 뿐, 모호하게나마 무언가 비난받아야할 그리스도교 신학이 있다고 봤던 것이었죠.. 안병무는 그의 저서 곳곳에서 독일을 비롯한 서구신학의 관념론적 병페를 꼬집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독교는 당연히 잘못된 형이상학이 부지불식 간에 전제됨으로 인해 세상을 보는 시각 또한 비뚤어지고 있으며, 결국은 내세적이고 비역사적인 것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잘못된 신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신학은 당연히 <지배이데올로기>의 충실한 시다바리가 될 것이며, 또한 맑스가 그렇게 비난했던 소위 <민중의 아편>으로서의 기능이 되게 됨은 자명한 것이지요..
 
 
오늘날 보수기독교인들의 행태와 의식구조를 본다면 이원론자들의 사고 패턴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현세보다 죽어서 가야할 천당 내세를,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초월자로서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완고한 기독교 교리 등등.. 사실 <영>, <육>이란 개념은 바울신학에 있어서도 단지 <좋은 것>과 <나쁜 것> 정도로 이렇게 봐야 적절하다고 봐지는데, 대다수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것>을 무슨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육적인 것>은 '눈에 보이는 육체나 물적 토대 따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죠..
 
 
이러한 행태는 곧바로 현재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곤고하게 하거나 정당화시켜주는 구실을 하는 신학으로 나타났으니 민중신학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지요.. 이원론적 세계관은 현실 사회의 삶 속에서 부지불식 간에 지배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아주 못된 습성을 지닌 형이상학이지요..
 
 
곁가지로 말씀드릴 것은, 성서가 시대적 산물이라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이원론적 사상과 도무지 맞지 않다고 봐지는 부정합한 교리가 그리스도교에 지금까지도 유유히 내려오는 게 있습니다.. 적어도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교리가 아닐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성육신> 사상입니다..
 
 
잘 알다시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육신 사상으로 인해 영지주의자들을 비롯한 다른 헬라문화권의 집단들과 극심한 갈등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요한1서 4장 1-3절에도 나올만큼 당시에도 그들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했엇습니다.. 80년대 반플라톤적인 유물론 신학에 한참 경도되어 있던 강원돈씨가 <물의 신학>을 펴고자 할 때 그가 성육신을 매우 유용한 개념으로 봤던 점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고 볼 수 있죠... 사실 민중신학 1세대, 2세대, 3세대를 몽땅 꿰뚫는 한정적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다 <반플라톤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현대의 과정신학과 저의 민중신학은 그리스도교가 화이트헤드의 <과정형이상학>과 결합할 것을 새롭게 권하고 있습니다. 모든 언명에 형이상학이 놓여지는 사태는 어차피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서 안에 나타난 예수의 행태를 언제나 최상의 형이상학과 접맥시키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고 봐집니다. 올바른 신앙과 성서해석은 우리가 최선의 <해석학적 존재론>으로서의 형이상학을 도입하여 지금까지의 기독교 사상을 새롭게 정비할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즉, 이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에 잘못 깔려있는 이원론을 과감히 버리고 본래의 다이나믹한 역사적 예수의 삶의 행태에 새롭게 접근하는 것과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습니다.. 그럴 경우 현재의 부정합한 기독교 교리 또한 여러 부분이 다시금 개정되리라 봅니다.. 이것은 21세기를 사는 기독교인으로써의 최선의 작업이요 마땅히 해야할 바가 아닐런지요..
 
 
혹시 화이트헤드 사상이 주는 유용함이 별다르게 급진적이지 않고 온건하다고 보신다면 곤란합니다.. 실은 제가 아는 그 어떤 철학사상도 화이트헤드 철학만큼 래디컬함을 요청하는 철학을 본 적 없습니다..(물론 또 제가 '백두최고다'라고 떠드는 것 같아 대뜸 반감이 있으실진 모르지만 그냥 이건 제 한계라고 해두죠..)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은 아예 저 깊숙한 존재론적 뿌리에서부터 새롭게 뜯어내어 갈아치우는 것이기에 <뿌리를 캐다>라는 <래디컬>Radical의 라틴어 어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철학사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추구하는 새로운 민중신학은 단순히 민중신학이 그 어떤 '시대적 상황에 따른 문제인식'을 해결하는 상황신학 혹은 특수신학의 하나가 아니라 아예 이천 년 주류 그리스도교 신학의 체질을 근원적으로 저 깊숙한 형이상학적 지평에서부터 다시 새롭게 뒤바꿀 것을 요청하는 신학입니다..
 
적어도 서구의 과정신학이 철저하게 고찰하지 못했던 사회변혁적 성격을 일관된 기술로 접맥시킨 것이 바로 제가 한국의 민중신학계에서 의도하고자 하는 <새로운 민중신학>이라고 보셔도 좋겠습니다..
 
 
이천 년 동안 이어온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충실한 시다바리였던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 신학이 환골탈태를 하려고 한다면, 주류 기독교 신학은 그 안에 놓여 있는 형이상학적 베이스를 근본적으로 물갈이해야 가능하다는 것이죠.. 민중신학이 진정으로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 전반을 새롭게 뒤엎으려면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금 새로 일으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 21세기입니다.. 기독교의 진보는 이천 년 세월을 뚫고 -물론 소수자로써 끊임없이 주류를 차지하는 관념적이고 보수적인 기독교와 싸워온 그리스도 공동체도 물론 없잖아 있었습니다만..-제3밀레니움의 시대에 이제 겨우 시작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천 년 동안 시행착오의 사슬을 끊고 이제 거대한 전환을 해야할 시점에 섰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는 혹시 제 말을 안믿으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그리스도교 신학의 진보적 방향은 개인 고독의 치유와 사회변혁에 대한 온전한 정당성 추구와 과학과 종교의 합리적 조화, 그리고 생태 패러다임의 방향으로 나가게 되어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화이트헤디안으로서는 참으로 느긋한 것이니까요..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리지만
언제나 민중신학에 대한 가장 뿌리깊은 탐사를 하길 원합니다..
 
 
고맙습니다..
 
 
 
 
 2003-03-04 21:37:37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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